한국에서도 선진국형 산학협력 시도가 등장했다. 삼성의 두뇌 역할을 하는 삼성종합기술원과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 손을 잡고 미래연구에 착수한 것이 그렇다. 협력 내용도 양자컴퓨터 퀀텀닷 등 첨단분야 공동 연구, 교수 연구년 활용 협업 강화, 정기 학술교류 포럼 등으로 구성했다. ‘개방형 혁신’ 실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번 시도는 정부가 주도한 산학협력이 아니다. 기업이 돈을 대고, 대학은 연구성과를 이전하는 일회성 산학협력과도 차원이 다르다. 공동연구 분야가 응용·개발이 아니라 10~20년 뒤를 생각하는 차세대 기초·원천기술이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삼성이 공대가 아니라 자연과학대를 협력 파트너로 선택한 건 더 이상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산학협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선진국 기업의 눈부신 혁신성과와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 뒤에는 기업과 대학이 ‘윈-윈’하는 산학협력이 있다. 첨단 기술기업이 넘쳐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대를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이번 모델이 성공하면 기업의 혁신 경쟁력과 대학의 연구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퍼스트 무버’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은 선진국형 연구문화나 혁신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기업이 이렇게 진화하는데 정부가 종래의 국책연구소 모델이나 산학협력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기업과 대학 간 이런 협력모델이 중소벤처기업으로도 널리 확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기 바란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 대학 개혁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

동시에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가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삼성-서울대 협력에서 보듯 차세대 성장동력 연구는 더 이상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초·원천연구는 모두 정부 몫이라는 사고도 낡은 것이다. 민간과의 전략적 협력이나 역할 분담 등을 고려한 정부 연구투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