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개방형 혁신'에 대한 오독(誤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개방형 혁신’을 들고나왔다. “미국 구글 등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르게 혁신 기술을 흡수하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들은 폐쇄형 기술개발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외국 기업이 하는 건 다 새롭고 좋아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기업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편견 없이 돌아보면 저런 발언은 나오기 어렵다. 한국이 경제개발에 시동을 걸었을 때 국내 기업은 밖으로 눈을 돌려 필요한 기술을 사왔다. 처음부터 개방형 혁신에 눈 뜬 건 한국 기업이라고 해야 맞는다.

1980~1990년대 들어 선진국 기업이 기술 보호를 강화하자 국내 기업은 내부 연구개발 투자로 눈을 돌리게 된다. 홍 장관은 이를 두고 ‘폐쇄형’이라고 하지만 당시 환경을 생각하면 기업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때 그런 대응이 없었다면 지금의 산업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혁신을 두고 ‘개방형’이니 ‘폐쇄형’이니 하지만 어느 쪽이건 이점이 있으면 리스크도 있기 마련이다.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게 기업이다. 더구나 ‘내부지식 축적’과 ‘외부지식 포착력’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이를 ‘이분법’으로 딱 잘라 구분하기도 어렵다.

지식기반 경제가 가속화하면서 환경이 또 급변하고 있다. 기업 밖의 지식이 안으로 들어오고, 기업 안의 지식이 밖으로 나가는 등 지식 흐름이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지식을 활용하는 기업의 혁신전략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개방형 혁신 하면 모두가 헨리 체스브로 미국 UC버클리 교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전략 자체는 기업의 작품이다. 체스브로의 공이 있다면 《오픈 이노베이션(2003)》 《오픈 비즈니스 모델(2006)》 《오픈 서비스 이노베이션(2010)》 등 일련의 ‘오픈’시리즈로 개방형 혁신이란 용어를 히트시킨 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기업 전략도 진화한다. 문제는 기업이 환경 변화를 인지하고서도 대응을 못하고 있다면 어찌 되겠느냐는 것이다. 홍 장관이 정책당국자라면 “구글은 잘하고 있는데 한국 대기업은 왜 저 모양이냐”고 말하기 전에 던졌어야 할 질문이다.

구글 등이 개방형 혁신을 하고 싶어도 미국 정부가 막고 있다면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구글 등에게 개방형 혁신으로 가는 길을 닦아준 것일까. 지식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든 ‘지식 이동성’, ‘기업주도 벤처캐피털(CVC)’, ‘인수합병(M&A)’ 등이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손보겠다” “대기업은 제값을 지불하라” 등 대·중소기업 간 적대감을 자극해 지식 이동성을 위축시키는 것부터 그렇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지식재산권 제도를 선진화하고 기술 거래를 활성화하는 등 시장적 처방을 하는 게 백배 효과적일 텐데도 말이다.

벤처캐피털도 그렇다. 구글 등은 CVC를 하나씩 끼고 개방형 혁신으로 질주하지만, 국내 대기업 CVC는 온갖 규제로 기를 펴지 못한다. 대신 모태펀드 등 관제펀드, 정책금융 등이 ‘왕 노릇’을 하고 있다.

M&A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M&A가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주홍글씨로 찍히는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정부는 일정기간 계열사 편입 유예를 미끼로 대기업 보고 M&A에 나서라고 한다. 현실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다.

이런 판국에 홍 장관은 한마디 덧붙였다. “대기업이 개방형 혁신에 나선다면 정부도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 기업들 복장 터질 소리만 골라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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