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의 논점과 관점] 최종구의 빅데이터 승부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그제 “금융이 빅데이터 테스트베드(시험장)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금융산업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영역인 빅데이터 분석과 활용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규제를 확 풀겠다는 것이다. 누구 명의의 거래인지 알 수 없도록 가공한 금융거래정보(비식별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해 보다 쉽게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금융계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유통 등 다른 업계까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입법 과정이 변수이지만 의료나 위치 관련 비식별 정보의 활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빅데이터 규제개혁이 금융 분야에서의 다양하고도 새로운 고부가가치 창업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활용 가능한 빅데이터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은 풀어야 할 숙제다.

가속화하는 '데이터 주도 경제'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데이터 주도 경제(data-driven economy)’로 전환되고 있다. 전통 제조 대기업을 제치고 데이터 플랫폼 기업이 세계 산업계를 호령한 지 오래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7곳이 구글 아마존 텐센트 알리바바 등 데이터 플랫폼 기업일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빅데이터 활용은 이제 첫걸음을 떼는 과정일 뿐이다. 첩첩산중인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인해 빅데이터 활용도에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에 한참 뒤처져 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활용의 전 단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만큼 의미 있는 빅데이터 분석은 사실상 힘들다. 신약 개발을 위해 필요한 비식별 의료정보 역시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정치권이 ‘개인정보 보호’와 ‘개인정보 활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익집단과 시민단체 등의 완벽한 비식별화나 완전한 정보보호 주장에 과도하게 휘둘려온 결과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인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놓고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은행업은 최근 20년간 사실상 새로운 진입자가 없는 유일한 산업으로 통한다. 은행업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없는 나라 역시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지난해 인터넷은행 두 곳이 출범했지만, 비금융 주력자의 은행 소유와 경영을 막고 있는 은산(銀産)분리 규제로 인해 시중은행과의 제대로 된 경쟁이 어려운 처지다.

진입장벽 없애야 금융혁신 가능

“규제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반도체·철강·조선 분야에서 나온 세계 최고 기업이 은행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도 정치권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금융 빅데이터 규제개혁이 금융혁신의 시발점으로 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 위원장은 진작부터 “진입 규제를 줄여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많이 참여해 금융업에서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1792년 정조가 편 개혁정책인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본떠, 올해(무술년)에 이른바 ‘무술통공(戊戌通共)’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신해통공은 허가받은 상인들의 독점권을 없애고 누구나 장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치로, 결국 기득권 타파를 통한 경쟁 확대가 핵심이었다.

최 위원장은 은행업 등 각 금융업 인가기준을 더 세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수요가 있다면 특화 금융회사 출현을 과감하게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기득권 철폐와 경쟁 강화는 누가 봐도 옳은 방향이다. 흔들림 없는 추진력이 중요하다.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