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서 멀어진 근로시간 단축

[뉴스의 맥] 주 52시간 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보완해야
오는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의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단축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국제적 추세다. 장시간 근로가 문제인 한국에선 국가적 과제가 돼 왔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줄이면 기업의 인건비는 늘어나고 근로자의 소득은 줄어든다. 임금체계나 일하는 방식이 장시간 근로 관행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일명 근로시간단축법) 개정안이 장기간 표류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이 법안이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데는 대법원도 한몫했다. 논란을 빚어온 휴일근로와 연장근로수당 중복 할증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관련법 보완 압력이 적지 않았다.

쫓기듯 처리하다 보니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대책이나 기업 지원 방안은 빠졌다. ‘실제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보’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꾀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훨씬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2052시간, 2016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이라고 자주 인용된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경제개발 시기 오래 일하던 관행을 토대로 마련돼 온 임금체계가 먼저 꼽힌다. 초과근무 때 통상임금에 얹어 주는 할증률은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에서 25%가 일반적이다. 일본도 월 6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만 50%를 적용한다. 한국은 일률적으로 50%이고, 휴일에 8시간을 넘은 부분은 50%를 더해 100%를 추가로 준다. 장시간 근로가 선호될 수밖에 없다.

경직된 노동시장도 장시간 근로의 배경으로 꼽힌다. 일단 채용하면 경기가 아무리 나빠져도 해고가 어렵다. 기업은 생산량 증가로 인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면 신규 채용이 아니라 기존 인력 추가 근로로 대처하는 게 유리하다. 이런 인력관리는 풀타임(전일제) 근로자보다 시간제 근로자 비율이 훨씬 낮은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시간제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따라서 연간 근로시간은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뉴스의 맥] 주 52시간 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보완해야
법정공휴일 유급화도 문제

일하는 시간은 길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가운데 낮은 수준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3.1달러로 미국(63.3달러)의 52.3%에 불과하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과도 격차가 크다. 낮은 생산성을 장시간 근로로 보완하는 구조다. 근로자의 삶의 질이 위협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에도 장시간 근로는 계속 문제가 됐고, 기사의 과로로 인한 버스사고도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확산시켰다.

휴일근로 중복 할증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가세했다. 근로시간과 초과근로 할증률과 관련한 법 조항을 대법원 판결 이전에 바꿔 사회적 혼란을 막자는 압력이 거세지자 국회는 ‘근로시간단축법’을 통과시켰다.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의 근로자는 주당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만 일할 수 있다. 위반하면 사업주는 처벌받는다. 단계적으로 확대돼 2021년 7월1일부터 5~49인 기업까지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인력 추가 채용이 불가피해 인건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만 유급으로 하는 법정 공휴일이 민간기업에도 적용돼 연간 15일 내외의 법정 공휴일은 쉬어도 임금을 줘야 한다. 일하면 휴일근로 수당까지 가산해서 지급해야 한다. 대기업은 단체협약에 이미 유급으로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부담이 늘어나는 곳은 중소기업이다. 법정 공휴일이 민간기업에도 유급휴일인 나라는 독일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독일은 주(州)별로 법정 공휴일이 연간 9~12일로 우리보다 적다.

시간 규제와 인력 활용 조화 필요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 인건비 증가, 근로자에게 소득 감소라는 부담을 지운다.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이 근로시간 단축과 다양한 지원책 시행을 병행한 이유다. 기업에는 근무체계·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보조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지원한다. 근로자에게는 소득 감소분의 일부를 지급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 잡힌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 국가에선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근로시간 유연성 제고책을 도입했다. 한국에도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있지만 근로자와 서면 합의해야 하고, 단위기간도 3개월에 그친다. 일감이 몰릴 때 더 일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뿐이라는 얘기다. 반기나 1년 동안 일이 몰리는 시기가 나뉘는 업종은 활용하기 힘든데도 개정된 법은 3개월 그대로다.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최장 1년이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계좌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운영한다. 미국은 관리직, 행정직 등 사무직 일부와 컴퓨터 전문직 등의 경우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두고 있다. 일본도 최근 도입을 추진 중이다. 모두 장시간 근로 규제와 기업의 인력 활용 유연성 사이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대책들이다.

법·제도와 별개로 노사 합의를 통한 유연성 제고 방안도 도입되고 있다. 독일 금속노조는 올초 사용자와 단체협약으로 주당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 요구권’을 도입했다. 육아, 간병 등의 사유가 있는 근로자는 2년간 주당 28시간 근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용자가 근로자와 합의해 주당 40시간까지 연장해서 일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허용했다. ‘근로자의 삶의 질’과 ‘근로시간의 유연성’의 조화를 꾀한 사례다.

노사 간 이해 대립으로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어려웠음을 감안해도 근로시간단축법이 균형 찾기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개정법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의 보완책을 2022년 말까지 마련한다는 선언적 내용을, 그것도 부칙에 끼워 넣었다.

기업문화 바뀌어야 '워라밸' 가능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파장이 크다. 임금체계와 근무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기업문화도 함께 바꿔야 한다. 그래야 근로시간 단축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근로시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3개월 남짓 이후면 근로시간 단축이 시작되는데 보완대책은 다음 정부 임기인 2022년 말로 미뤄 놓은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고용의 경직성과 인건비 부담을 내세워 탈(脫)한국을 경고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