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다른 피해자 낳는 채용비리 조사
한국석유관리원은 지난 1월 채용비리 혐의로 징계받은 임직원 5명에 대해 재심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달 말 이들 5명과 신성철 전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에 대해 “특정인을 채용할 목적으로 점수를 조작하거나 사전에 합격자를 내정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신 전 이사장은 지난 1월 2년여 임기를 남기고 사임해 무혐의 처분에도 불구하고 구제받기가 어렵다. 신 전 이사장은 사임할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퇴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며 외압설을 제기했다.

정부 공공기관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는 신 전 이사장 등 한국석유관리원 임직원들이 2016년 직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심사표를 위조한 것으로 보고 지난 1월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외부 면접위원이 비워 놓은 합계 점수란을 사전 내정 순위에 맞춰 임의로 채워 넣은 혐의를 씌웠다. 경찰 수사 결과 외부 면접위원이 실수로 비워 놓자 임직원들이 해당 위원에 연락해서 애초 점수대로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공공기관인 용인문화재단도 특별대책본부로부터 채용비리 기관으로 지목받았다가 지난달 경찰 수사에서 혐의를 벗었다.

특별대책본부는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등 1190곳을 대상으로 과거 5년간 채용 실태 전반에 대해 특별점검에 착수했다. 이후 불과 3개월 만인 지난 1월 946개 기관·단체에서 모두 4788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하고,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109건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채용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장 8명은 즉시 해임됐다. 이례적인 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에 “채용비리 척결을 명목으로 ‘공공기관장 물갈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는 기관들이 잇따르면서 이 같은 의심은 더욱 커지게 됐다.

채용비리는 여론의 공분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만큼 정부가 점수를 따기에 좋은 테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경우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한국석유관리원 용인문화재단 외에 나머지 107곳에서도 억울한 사례들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