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마다 경제활성화 시책으로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김영삼 정부는 규제실명제를 처음 도입했고, 김대중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규제 완화를 꾀했다. 노무현 정부는 규제일몰제와 규제총량제를 시행했고,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워 ‘규제 전봇대 뽑기’에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라며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과거 정부들은 공장 신·증축 절차를 일부 간소화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들이 체감할 만한 규제개혁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호소가 기업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고용·노동관련 정책들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친노조’ 편향으로 추진되면서 기업의욕과 활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 투자를 빼면 기업들의 국내 대규모 시설투자는 거의 실종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 7곳이 최근 7년 동안 국내에서 늘린 일자리는 2만2000개인 반면, 해외에 새로 만든 일자리는 15만3000개에 달했다. 활력을 잃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정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왜 제대로 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지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혁신성장’은 문재인 정부가 기업의욕을 북돋기 위해 내놓은 정책 슬로건이다. ‘선(先)허용, 후(後)규제’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기술혁신을 독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산업 발전과 경제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준비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등 규제 샌드박스 5개 법안이 오히려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독소조항으로 가득하다는 보도(한경 3월17일자 A1, 3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주재한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과감한 방식,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던 게 무색해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른바 ‘대기업 알레르기’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 기조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기업 특혜가 될 수 있는 조치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으로, 간판 규제혁파 정책인 규제 샌드박스 법안마저 하나마나한 법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의료·바이오·제약 등 신산업의 토양이 될 분야를 규제 샌드박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기업들을 밀어주고 키우기 위해 보호주의적 통상 조치마저 불사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만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두려워하거나 시대착오적인 ‘형평론’에 포획돼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눈앞의 선거를 의식해 당장의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책이 아니라, 후세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를 고뇌하는 성찰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