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노동 존중과 노동계 존중
노동정책은 숨가쁜 진행형이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원을 향해 달음박질이다. 근로시간은 7월부터 단계적으로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청와대의 개헌안도 노동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유럽 각국의 노동법제에도 밝은 한 대학교수는 대한민국의 노동정책을 이색적으로 진단했다. “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계 존중”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63번째 과제가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이다. ‘노동 존중’을 ‘노동계 존중’으로 바꾼 셈이다.

'열 명 중 한 명'에게만 유리

노동계 범위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생활인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들이는 육체적·정신적 노력’이라는 노동의 사전적 의미에 비춰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계는 노동과 관련해 행동하는 이들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범위를 좁히면 노동조합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3%다. 노조조직 대상 근로자 열 명 중 한 명꼴로 노조원이라는 얘기다. 노조를 아우르는 연합단체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다. ‘노동계 존중’은 노동정책의 혜택이 당장엔 ‘아홉 명’이 아니라 ‘한 명’에게만 돌아가고 있음을 에둘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왜일까.

최근 파장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노동정책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단축이다. ‘최저임금 인상 쇼크’는 치킨집 커피숍 등 자영업에서 두드러진다. 이들 업종은 업주 자신이 자신의 사업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업장의 이윤을 임금 형태로 받는 곳이 대부분이다. 노동자이면서도 아르바이트생의 최저임금을 떠안아야 한다. 노조라는 우산은 없다. 3D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이 내국인 근로자 임금을 밀어올릴 판이라며 울상이다. 제조업 노조들은 사정이 다르다. 대기업 인사·노무팀 관계자는 “노조 측은 올해 임금협상 때 16.4%라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카드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생산성에 합당한 처우를

노동과 근로시간단축은 중견·중소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발등의 불’이다.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직원을 구해야 하는데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납기를 못 맞추면 살아남기 어렵다. 직원들도 실직자가 될 테고. 2021년 6월 말까지 법 적용은 유예됐지만 그때도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직원 10여 명을 둔 수도권 외곽의 한 원단공장 사장의 하소연이다. 반면 ‘한 명’은 근로시간단축만큼 급여도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노조의 우산 아래에 있어서다. ‘정년 60세법’은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해야 한다.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 신규 채용이 가능해지고, 청년 ‘고용절벽’도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임금피크제는 노동계 반발로 ‘없던 일’이 되고 있다. 근로시간단축의 혜택도 ‘한 명’에게 쏠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노동을 강조하는 개헌안도 마찬가지다.

노조라는 울타리 안의 조합원 보호가 우선인 노동계가 비조합원을 무턱대고 보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동정책 수립과 집행은 얘기가 다르다. 법제도는 형평성과 보편성이 중요하다.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은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실현해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약속이다. 전제는 노동과 그에 따른 생산성에 대한 합당한 처우다. 작금의 흐름은 ‘노동계 존중’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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