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여야는 개헌 일정 합의하고 대통령 안은 철회해야
국회의원 대다수는 1번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1번을 강변하지 못한다. 국민의 질타가 무서워서다. 여당은 대통령의 의지를 좇아 2번을 골랐다. 야당은 3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아직까지 답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 개헌 얘기다.

국회를 출입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본 적이 없다. 총론 공감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헌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매번 싸움판이 된다. 국회의장을 지낸 한 정치 원로는 “국회의원들이 가장 원하는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1번)지만 국민의 반대가 무서워 입도 뻥끗 못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는 게 4년 연임제(2번), 대통령은 외치를 맡고 국회가 내치 총리를 뽑는 이원집정부제(3번)다”고 전했다.

개헌에는 찬성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쪼개 국회로 넘기는 데 국민은 난색을 표한다. “현 대통령제에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길 수는 없다”는 정서가 국민이 정치권에 보내는 일반적 신뢰 수준이다. 여러 개헌 관련 여론조사에서 의원내각제 지지가 5% 내외에 그친 데 비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4년 연임제는 60~70%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20~30%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1일까지 정부 개헌안을 내놓겠다고 밝히면서 개헌 논의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21일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60일(5월20일) 이내에 국회는 찬반 표결을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관제 개헌의 오점을 남길 것”이라며 반발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개헌 논의에서 지금까지는 문 대통령이 명분상 우위에 있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지난해 대선 때 6월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는 문 대통령을 포함해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등 여야 주요 후보가 모두 국민 앞에 한 약속이다. 이제 와서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한 전례가 없다. 투표지가 너무 많아 유권자들이 헷갈려 한다”는 주장은 옹색하다. 문 대통령이 “국회가 지난 1년간 허송세월만 했지 않느냐”고 따져 물어도 할 말은 없는 상황이다.

정치에서 명분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렇지만 정치를 명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은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 개헌안 국회 표결에 재적의원 3분의 2 동의가 필요한 마당에 정부 개헌안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약속 이행보다 ‘국회 압박용’ ‘반개헌 세력 낙인찍기’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개헌은 국회·대통령·국민 등 3주체가 ‘3인4각 경주’를 하듯 빈틈없이 호흡을 맞춰야 겨우 풀어낼 수 있는 난제다. 안타깝게도 1948년 제헌 헌법 이후 아홉 차례의 개헌은 모두 일방통행이었다. 개헌 3주체가 모두 합의하는 개헌안이 시급한 이유다.

대통령과 국회가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 6월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를 공언했던 대선 주자들이 약속 파기를 사과하는 데서부터 사태를 풀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야는 6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하되 국회 표결과 국민투표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등 중재안을 서둘러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 등이 제시한 대안이다. 여야가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으면 문 대통령은 정부 개헌안 발의와 6월 동시 투표 입장을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 개헌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국민 몫으로 남겨두는 여백의 정치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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