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북·미회담 '차이나 패싱' 현실화되나

[뉴스의 맥] 북핵 문제 해결된다면 동북아 분업구도 새판 짜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5월 북·미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각국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미국과 한국, 북한 3각 체제로 전개되면서 미국의 ‘차이나 패싱’도 제기되는 마당이다. 해외 언론들은 중국의 초조감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교역량의 90%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북한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해온 국가가 중국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태에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할지 주목된다.

북한을 방문한 뒤 미국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약속받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2일 중국에 건너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 장관 등 외교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은 한국,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할 것”이라며 앞으로 중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임을 드러냈다. 왕 장관도 “그동안 중국의 압박이 북한을 대화로 불러냈다”며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어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국 네티즌은 중국의 이익이 훼손됐다며 정상회담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초조감이 여기저기서 읽히고 있다.

중국은 이번 회담의 이니셔티브를 전혀 쥐지 못했다. 정상회담 관련 얘기도 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중국의 강력한 우방인 북한을 떼어내 중국을 동아시아에서 ‘고립’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그들은 하고 있다.
[뉴스의 맥] 북핵 문제 해결된다면 동북아 분업구도 새판 짜인다
중국 초조함 곳곳에서 엿보여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 주석의 만남을 빗대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을 분석했다. 닉슨과 마오의 만남이 당시 미국의 주적이던 러시아에 맞선 것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오히려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을 띤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닉슨과의 회담 이후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러시아와의 친교에서 탈피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구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신문은 따라서 정상회담으로 가장 화가 날 사람은 시진핑과 베이징의 외교관들이라고 했다. FT는 “중국이 난폭한 아이(북한)를 다루느라 고생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풍자했다.

북한으로선 그동안 중국이 거의 유일한 교역 및 협력 대상이었다. 북·중 교역은 2000년대부터 급격히 확대돼 왔다. 중국의 경제 발전과 동북 3성 개발전략에 힘입었다. 북한은 생필품과 원유를 주로 수입했으며 광물 자원 등을 수출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중국 교역은 감소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그래프 1). 중국은 북한에서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계약만 공표하고 실제 사업은 진행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면서 교역과 투자를 중국에 의존한 것은 일종의 전략이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북한 경제를 살리려면 편향된 구조에 의존하기보다는 노동집약적 생산의 강점을 살려 경공업 위주의 제조업 발전을 위한 해외 투자를 다양하게 유치하고 국내 생산을 활성화하는 것이 맞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중국의 대북 투자는 제조업 발전을 이끌지 못했다. 북한이 2004년 신의주에 자본주의 특구를 만든다고 하면서 중국 사업가 양빈을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자 중국은 양빈을 전격 체포한 사례도 있다. 북한 제조업이 발전하면 중국으로선 경쟁국이 될 수밖에 없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에 의존했던 북한 경제

중국이 미국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대북 경제 제재 수위를 높이자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11월 시 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쑹타우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장은 평양에 3박4일 있었지만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의 핵심 의제를 경제에 두고 중국과의 거래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 결정은 중국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대부분 국제관계에서 북한 핵폐기 문제를 가장 큰 의제로 상정했다. 지난해 4월과 10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의제는 북한 비핵화였다. 중국은 일찌감치 미국과 북한 회담을 강조해왔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이 중개자로 참여하는 미·북·중 3각체제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북·미 회담의 성사로 중국의 이런 구도는 깨지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중국, 대북 영향력 줄어들까 우려

트럼프 정부는 이미 철강 관세 부과와 태양광 패널의 세이프가드에 이어 유럽연합(EU), 일본과 공동으로 중국을 불공정 무역국가로 낙인찍었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도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무산시켰다. 통상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중국을 계속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진핑과 함께 만든 지구온난화 협약인 파리협정에서의 이탈을 밝혀 협정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중국이 협력한 이란 핵합의도 포기를 시사하고 있다. 이제 북한 핵카드마저 사라진다면 중국으로선 트럼프에 대항할 만한 카드가 없다. 이번에 트럼프가 외교적으로도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마저 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왕이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선진국과 개도국으로서 미·중 협력이 양국과 세계에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을 개도국으로 표현하면서 미·중 간에 경쟁이 있을 수 있지만 상대로 삼을 필요가 없고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북아 질서의 재편

중국이 이렇듯 미국의 눈치를 보지만 북·미 간 만남에선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북·미 간 만남을 계기로 중국이 다시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양국 관계가 계속 진척될 것이라고 점친다.

정작 관심거리는 북핵 폐기 등 현 단계에서 가장 낙관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동아시아의 경제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투자하는 등 경제협력이 추진된다면 북한의 노동집약적 경제 구조가 동북아 분업 구도의 틀 속에 편입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북한도 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미·일 동맹 관계에서 짜인 경제 관계의 틀 속에 북한이 편입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권이 형성되고 새로운 분업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