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 맡겨진 과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연임에 성공했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명목적인 측면에서 ‘한은 독립’이 이뤄진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첫 연임 총재가 배출됐다. 그것도 여야가 뒤바뀐 정권교체하에서 구정권이 임명한 총재를 연임시킨 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으로서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청문회에 따른 부담으로 경쟁이 제한됐다는 해석도 내리지만 필자가 볼 때 그것은 사실일지라도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중요한 점은 한은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그만큼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1998년이 한은의 명목적 독립을 구축한 해였다면 2018년은 한은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독립의 초석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어렵고 긴 여정 속에 확보된 한은의 독립성 구축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 총재는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향후 4년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 총재가 당면한 대내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올해 미국의 금리 인상은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 예측된다. 당장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이뤄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가 한두 번 앞당겨진다고 해서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직접적 충격이 가해지진 않는다. 미국의 경우 금리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력은 크지 않다. 화폐 유통속도나 통화승수 효과의 민감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랜 제로(0)금리 및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 여파로 금리정책이 가져오는 시그널링 효과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며, 이로 인해 자본시장을 비롯한 자산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이 중립적일 경우 금리와 위험자산 가격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안전자산인 국채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간의 대체효과 때문이다. 투자자가 위험자산을 선호할 경우 국채에서 돈을 빼내 위험자산으로 옮기기 때문에 국채금리는 상승하고 위험자산 가격도 올라간다. 반대로 투자자가 위험을 감지하거나 위험회피성향이 높아지면 국채금리와 위험자산 가격은 하락한다. 특히 글로벌 매크로 펀드나 CTA(원자재 투자 헤지펀드) 같은 헤지펀드들이 집중 공략하는 미국 국채선물의 현물자산은 통상 만기가 7년에서 8년물이기 때문에 벤치마크물인 10년 만기 국채금리와 주가의 상관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양(+)의 관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깨졌다. 시중금리는 하락하는 반면 자산 가격은 급등한 것이다. 이렇게 둘의 관계가 음(-)의 관계로 돌아선 것은 양적완화 영향이다. 둘의 대체관계를 지울 만큼 유동성이 금융시장에 쏟아지면서 국채 가격과 위험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한 것이다. 이런 과잉 유동성은 실물경제에서 저물가로 인해 필립스 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그 일차적 원인이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물가가 암묵적 타깃인 2%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유동성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는 단계가 되다 보니 역으로 국채시장과 위험자산시장에서 동시에 자금이 유출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중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시장에서 유동성이 빠져나간다는 바로미터가 되며, 이로 인해 위험자산 가격도 조정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속도 및 양적완화를 되돌리는 데에 시장과의 소통이 극단적으로 중요한 상황에 내몰렸다. 자칫 실수할 경우 2008년 상황에 버금가는 시장의 폭락이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가계자산이 대부분 금융자산인 데 반해 한국은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한국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특히 부동산까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국제 금융시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하고 이를 정확히 해석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일 필요성이 요구되며, 이는 이 총재와 한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금통위원들이 ‘콘크리트 벽 속의 선비들’에서 벗어나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과 소통하고, 이번 기회에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도 확대해 독립성 수준에 맞는 위상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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