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21세기 바벨탑
평창올림픽의 스타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통역기였다. 자동통번역 부문 공식 소프트웨어였던 ‘말랑말랑 지니톡’은 각국 선수와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아랍어까지 통역했다.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곧 웨어러블 기기로도 선보인다고 한다. 웨어러블 통역기에는 스마트폰 단말기가 필요 없다. 그동안에는 통번역앱의 언어쌍을 선택한 뒤 스마트폰을 입에 대고 말해야 했지만, 별도 조작 없이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다.

제품 형태도 목에 거는 넥밴드 외에 이어폰과 스마트워치 등으로 다양해진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웨어러블 통역기 시장은 2~5년 내 안정화 단계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구글과 도플러랩스 등 여러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제는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의 언어 장벽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통역 원천기술을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 소관 기구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기업들에 제공해 제품 개발 등 실용화를 돕겠다는 취지다.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통역 부문은 정보기술(IT)의 신기원으로 불리고 있다. 기술 전쟁도 격화되고 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IT가 바벨탑을 다시 쌓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바벨탑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건축물로 바빌론 사람들이 하늘에 오르려고 쌓았다는 탑이다.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언어를 여러 갈래로 분리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작업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이후 바벨(babel)은 ‘혼돈’과 ‘무모한 도전’ ‘금기 영역’을 뜻하는 은유로 쓰이게 됐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순간 인류 역사는 혼돈에 빠질지 모른다. 혼돈은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생각의 굴절을 부른다.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자동통역기의 한계는 분명하다. 인공지능 로봇이 소설까지 쓰는 시대라지만,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온전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 어떤 말은 독이 되고 약이 된다. 더구나 개인의 지문만큼 다양한 목소리의 무늬(聲紋)와 영혼의 결까지 담아내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