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평창 '올림픽 레거시'에 주목할 때
참으로 아름다운 축제였다. 0.01초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친 올림피언들의 치열한 승부에는 그들과 내가 같은 인류라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땀과 정열과 박수갈채의 축전이 끝나고 경기장 선수촌이 텅 빈 뒤에야 비로소 시작하는 또 하나의 승부가 있다. 바로 ‘올림픽 레거시’의 도전이다.

총 13개의 경기장을 짓거나 고치는 데 1조원가량을 쓴 평창 동계올림픽은 나름 ‘알뜰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 이후 동계올림픽 평균 경기장 공사비가 3조7000억원이었다니 정말 많이 아낀 셈이다. 올림픽 운영 예산 2조8000억원에, 3000억원 적자 예상을 깨고 흑자 올림픽이 될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KTX 등 인프라 건설 비용을 포함하면 평창올림픽의 계산서 총액은 13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55조원을 쏟아부은 2014년 소치올림픽을 제외하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가 7조3500억원, 2006년 토리노 4조6500억원, 2010년 밴쿠버가 7조9600억원 수준이었으니 평창도 ‘작은 올림픽’은 아닌 셈이다.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창올림픽의 경제적 효과가 6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자주 인용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수준의 낙관적인 전망이라, 곳곳에 물음표가 달려 있다. 오히려 ‘올림픽의 저주’가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은 사례가 많다. 1976년 올림픽으로 1조원 이상을 손해본 캐나다 몬트리올은 30년이 지난 2006년에야 올림픽 빚을 다 갚았고, 1998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일본 나가노는 17조원 빚의 덫에 걸려 20년을 허덕였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대회시설이 폐회 몇 달 만에 폐허로 방치된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던 오슬로(노르웨이)와 스톡홀름(스웨덴), 쿠라쿠프(폴란드)가 과도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포기했다는 소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과도한 비용으로 올림픽 개최 후 어려움에 빠지거나 유치 자체를 포기하는 도시가 속출하자 2000년대부터 급부상한 것이 ‘올림픽 레거시(olympic legacy)’다. 올림픽 레거시란 ‘올림픽 개최로 인해 창출되는 모든 지속적인 효과’라 할 수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시원하게 뚫린 KTX와 고속도로, 경기장 시설부터 컬링에 봅슬레이 경기까지 챙겨본 우리 국민의 스포츠 인식 변화에 이르기까지 스포츠 경제 문화 환경 도시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올림픽 효과’를 포함한다. 올림픽 게임을 통해 얻은 시설과 자원, 변화를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3년 IOC 헌장에 ‘올림픽 대회가 개최 도시와 개최국에 긍정적 유산을 남기도록 장려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레거시를 명문화했고, 이후 모든 올림픽 유치 후보지는 올림픽 이후 레거시 계획을 제출하게 돼 있다.

이처럼 ‘대회 후’에 대한 강조는 ‘올림픽 성공’과 ‘올림픽을 개최한 지역 공동체의 성공’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역대 올림픽 중 레거시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고 평가받는 2012년 런던올림픽은 올림픽 파크를 설계하기 전부터 대회조직위원회와 별도로 ‘올림픽 파크 레거시 회사(OPLC)’를 설립해 준비 단계에서부터 올림픽 이후를 챙기기도 했다.

지금까지 평창올림픽 이후의 평창, 그리고 강원도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강원도는 ‘강원비전 2040’이란 이름의 중장기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알량한 자존심 대신 실리를 택한 경기장 재정 축소 역시 레거시 관리의 좋은 사례로 올림픽사(史)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2조4000억원이 들어간 동홍천고속도로, 4조원이 들어간 원주~강릉 KTX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가. 우리는 평창과 강원도의 미래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답을 찾아내야 한다. 계속되는 침체와 인구 축소의 그늘이 짙은 강원도에 평창의 레거시는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