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공조차 안 보는 '블라인드 채용'
“입사 지원자 면접을 보는데 인사팀에서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이유로 전공조차 공개하지 않더라고요. 계리 담당자를 인상으로만 뽑을 수도 없고….”

최근 신입사원을 채용한 한 보험사 임원은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답답해했다. 보험사와 카드사, 증권사 등 2금융권 업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 가족관계, 고향뿐 아니라 출신 학교와 전공, 학점, 외국어 공인점수 등 ‘스펙’을 배제하고 직무능력을 집중 검증하겠다는 취지의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일자리 정책 중 하나다. 지난해 하반기 공기업을 시작으로 민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채를 실시한 상당수 2금융권 업체에선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놓고 내부에서 치열한 격론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자 ‘전공’도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채용 심사항목에서 배제해야 하는지를 놓고 내부 반발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비교적 전공과 무관한 영업·마케팅 분야에 비해 계리 및 리스크관리 업무 등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2금융권에선 신입사원 채용 시 전공은 심사항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신입사원 채용 때 면접을 보긴 하지만 구체적인 전공 지식을 묻지는 않기 때문에 지원자의 전문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외모’나 ‘말발’을 갖춘 지원자가 되레 혜택을 보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렇다 보니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지원자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시 전공을 비공개로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

블라인드 채용의 목적은 출신 지역이나 학교 등에 상관없이 실력만 보고 직무능력이 뛰어난 신입사원을 뽑겠다는 것이다. 직무능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 전공은 필수 항목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최소 4년간 관련 전공을 공부한 지원자와 그렇지 않은 지원자를 구분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차별이냐”는 한 보험사 임원의 항변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블라인드 채용이 당초 취지와 달리 ‘눈먼 채용’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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