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자리 정책의 정석
논란은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은 경제성과의 총괄적인 지표로 사용되고 있고 그 증가율은 경제성장의 척도가 된다. GDP는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의 일자리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의 합이다. 경제는 결국 이들 일자리의 집합체이며, 일자리 수와 함께 개별 일자리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 수준이 경제의 총량적인 성과와 개별 근로자의 경제적인 후생 수준을 결정한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핵심은 일자리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개별 일자리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이 지속적으로 둔화되는 가운데 일자리의 양적 증가와 질적 고부가가치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은 우려스럽다. 그동안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적잖은 예산이 투입됐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다른 정책과 상충되거나 실질적인 규제 완화와 인적 자원의 질적 향상 등 적극적인 일자리정책 부재로 그 효과는 미미하다. 일자리정책이 오(誤)조준됐거나 공포탄 수준에 그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자리정책은 저출산정책의 전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분간 정책의 우선순위를 일자리에 두고, 이와 상충되는 정책을 조정하면서 정조준된 일자리정책을 추진해 고용 확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일자리의 양적 증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부문을 활성화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기업 부문을 외면하는 것은 최고의 주전 선수를 벤치에 묶어 놓는 것과 같다. 아울러 일자리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과 자영업 일자리 비중을 줄이고 대기업과 신생 첨단기술기업 일자리 비중을 늘려야 한다. 전체 일자리의 88%가 속해 있는 중소기업 부문과 자영업 비중을 줄여 경제의 일자리 분포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일자리의 고부가가치화는 어렵다. 우리 경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과잉인 반면 대기업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다. 이런 기업 분포의 이중성은 고용구조의 이중성과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우선 제대로 된 일자리정책의 출발은 일자리가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노동의 수요자인 기업은 고용에 수반하는 비용과 그 기대수익을 비교해 고용 여부를 결정하고, 노동의 공급자도 자신의 노동의 질과 임금 등을 고려해 취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 촉진을 위한 정책의 정석은 고용에 따른 기업의 비용을 합리화하면서 그 기대수익을 높이고, 나아가 오늘날 기업이 요구하는 일자리에 걸맞은 매력적인 역량을 갖춘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르면 일자리정책의 정공법은 명확하다. 첫째, 고용비용을 낮추기 위해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를 확대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기술 및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은 오늘날 고용의 경직성은 가장 큰 비용이자 고용 기피 요인이다. 둘째, 자유로운 기업 환경을 만들어 투자와 고용의 기대수익을 높여야 한다. 우선 현행 법령들을 재검토해 불합리하고 선험적인 규제 조항을 걷어내야 한다. 셋째, 인적 자원의 질을 고용친화적으로 높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일자리가 첨단지식이나 현장밀착기술을 요구하고 있고, 고학력 청년실업은 기업과 구직 희망자의 역량 불일치에 크게 기인한다. 교육 및 훈련제도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한편 반(反)기업정서의 확산과 ‘대기업 패싱’은 일자리 창출에서 자해행위에 가깝다. 과도한 반기업정서는 기업의 활력을 낮추고, 대기업 패싱은 일자리의 고부가가치화를 저해하며, 벤처 및 중소기업의 성장생태계를 위축시킨다. 이와 함께 고용의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실업이 될 경우 큰 어려움 없이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실질적인 교육훈련 기회 등 생산적인 사회안전망을 세심하게 구축해야 한다. 예산에 의존하는 일자리 사업이나 임금 보전 등으로는 청년실업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도를 지향하는 담대한 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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