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4차 산업혁명의 종착지
“역사의 역학이 인간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 역사가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며 인간 다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시대변화가 진보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은연중에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대부분 사람이 그 결과를 크게 우려하는 거대한 흐름이 하나 있는데,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공장과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 인터넷 등 정보화가 이뤄진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4차 산업혁명은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서 그 파급력을 채 예견하고 대비할 충분한 시간 없이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운명을 내맡길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흐름이 모두에게 축복이 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것이다. 아마 기회는 1%가 가져가고 위협은 99%가 감당하게 될지 모르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자동화의 진전 등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등 중산층 몰락과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한 바 있다.

농업혁명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이 노동하고도 상대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 인류에게 4차 산업혁명은 삶의 여유를 찾고 가치를 높이는 최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단 우리가 충분히 대비해 놓는다면 말이다. 역사의 역학이 항상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진 후에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혜를 모은다면, 역사의 방향 자체를 선회할 수는 없을지라도 도착지 풍경은 조금이나마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