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주의에 사로잡힌 미국 중도좌파

한편에서 선거 결과를 존중하지 않고 다른 편을 불법 세력으로 간주할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 최근 미국에서 이 문제는 심화하고 있는 듯하며 민주주의의 결과에 대한 무시는 중도좌파 진영에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대개 정치적 중도가 더 합리적이고 당파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도주의자들은 이념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당파주의에 덜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양극화된 시대에 정당 간 경쟁은 부족 간 전쟁과 비슷해졌다. 모든 정치인이 지지자를 똘똘 뭉치게 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적을 공격하고 당파적 분열을 고조하는 것 외에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결집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 실수 되풀이하는 민주당

많은 민주당원은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클린턴의 전형적인 중도좌파적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폭로한 백악관의 수사 중단 압력, 심지어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무지를 변명거리로 삼는다. 클린턴 자신이 이미 2016년 9월 유권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트럼프 지지자를 “개탄스러운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도 민주당은 여전히 클린턴이 한 것처럼 트럼프의 독특한 결점이 그의 패배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며 지난 대선의 실수를 되풀이하려 한다.

중도좌파들을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같은 좌파 지도자들과 대조해보라. 이들은 트럼프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의 탄핵이나 러시아 관련 수사를 앞장서서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모두 트럼프 지지자를 떼어내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고 있고, 특히 샌더스는 대선 후에 공화당원에게까지 저변을 넓히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주류 언론도 일반적으로 중도좌파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들은 ‘폭군 공포증’에 가까운 반(反)트럼프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독재자라는 주장은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 폭정의 개념을 왜곡할 정도로 사실과 맞지 않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에 대해 미국진보센터 산하 매체 싱크프로그레스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훼방에도 북한의 ‘매력 공세’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고 트위터에 썼다.

감정에 기대는 정치는 위험

사람들은 뭔가를 믿고 싶어 하기 때문에 뚜렷한 이념이 없을 때는 당파주의와 막연한 공포가 당장에 기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적을 갖는 것은 강력한 동기 부여를 제공하고 트럼프를 미워하는 일은 이를 강화한다.

과거의 중도주의자들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당파주의자 중 일부가 됐다. 당파주의 그 자체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정당들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실제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중도파가 추구하는 당파주의는 확실한 해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념이 아니라 감정에 기대는 정치는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것은 민주당에 더 많은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할까? 가치와 비전에 전념하는 정치인들은 대개 뭔가를 입증해야 할 부담이 적다. 그들은 트럼프처럼 핵심 지지층을 의식한 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샤디 하미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Why the Center-Left Became Immoderate’라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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