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몰디브의 비극
인도양의 휴양지 몰디브는 1192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인구는 40만 명도 안 되지만 섬들이 남북으로 750㎞, 동서로 120㎞에 흩어져 있어 영해는 아주 넓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도 92만3322㎢로 한국의 두 배나 된다.

몰디브라는 이름은 현지어로 ‘꽃의 섬’이라는 뜻이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인도양의 꽃’이라고 불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섬들이 둥근 화환을 닮았다. 아톨(atoll)이라고 불리는 고리 모양의 환상(環狀) 산호초를 라군(lagoon·석호)이 둘러싸고 있다. 라군은 높은 파도를 막아 섬 주변을 호수처럼 잔잔하게 해준다.

이런 산호섬들의 멋진 경관 덕분에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든다. 섬 하나를 하나의 리조트로 개발하는 ‘1섬 1리조트 전략’도 휴양객을 끌어 모으는 비결이다. 섬 주변 바닷속에서는 1000여 종의 물고기를 볼 수 있어 다이버들에게 ‘천국’으로 불린다. 관광업 비중이 크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다. 인구 대부분이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회교국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역사적으로는 풍파가 많았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에 점령됐고 19세기 말에는 영국 보호령이자 스리랑카 식민지가 됐다. 1948년 영국 직할 보호국으로 바뀌었다가 1965년에야 독립했다. 1968년 공화국으로 전환한 뒤에도 1985년 영연방에 가입했다가 2016년에 탈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치적 혼란도 심했다. 1968년 이후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집권자들이 1조원 규모의 돈세탁에 연루되는 등 독재와 부패가 만연했다. 2015년에는 대통령 부부의 쾌속정 폭파 용의자로 부통령이 체포되면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올 들어서도 정정 불안이 계속되더니 비상사태가 또 선포됐다. 대법원이 정치범 석방을 결정하자 대통령이 발끈하며 초강수를 던졌다. 재선 구도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해 정적이자 이복형인 전직 대통령도 체포했다. 각국은 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한국 외교부도 “수도가 있는 말레섬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 배경에 인도와 중국이 있다”며 “몰디브가 두 나라의 대리 전쟁터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 이후 친중국 정책으로 일관하자 이를 견제하려는 인도가 야당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몰디브 여행을 예약한 관광객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 그나마 수도가 있는 말레섬을 제외한 휴양 리조트들은 괜찮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관광객 덕분에 살아나는 경제가 정치에 발목 잡혀 주저앉는 모습을 지켜보는 몰디브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