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시장을 간섭하는 정책은 최하책"
《화식열전(貨殖列傳)》은 한나라 무제 때 사마천(BC 145~BC 86)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에 수록된 부자들의 이야기다. 《사기》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다. 본기와 세가는 각각 황제와 제후들의 업적을 기록했다. 표는 역사적 사건을 정리한 연표(年表), 서는 제도와 풍속을 담은 책이다. 열전은 재상, 영웅호걸, 성인, 명의, 장군 등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화식열전》은 70편에 이르는 열전의 69번째로, 글자 그대로 ‘재물(貨)을 늘린(殖)’ 거부(巨富)들의 행적을 담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는 백규 등의 활약상이 기록돼 있다.

[다시 읽는 명저] "시장을 간섭하는 정책은 최하책"
춘추전국시대 책사와 학자들도 상당수가 《화식열전》에서 부자 반열에 올라 있다. 주나라 문왕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강태공, 관포지교(管鮑之交: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의 주인공이자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끈 관중,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범려, 공자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자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국강병을 위해 상공업을 장려했고, 자신들도 상공업에 종사해 큰 부를 일궜다. 관중은 “지위는 신하였으나 열국(列國·여러 나라)의 군주보다 부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식열전》의 가치는 단순한 ‘부자평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자들의 경제 활동을 빌려 가격 형성 구조 등 시장 원리를 설명하고 이를 체계화했다. 제후들이 갈망하는 부국강병(富國强兵)도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전제돼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고전 경제학의 시조인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1723~1790)보다 1800년 앞서 “부국(富國)의 원리가 자유로운 시장에 있다”는 것을 설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국의 원리는 시장에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하여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각자가 생업에 힘쓰는 것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물건이 부족하면 절로 모여들고, 넘치면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나라가 생업에 간섭하지 않으면 물자가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 공평하게 유통된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시장이 스스로 조절한다는 스미스의 설명과 거의 같다. 개인의 영리 추구가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주장과도 일치한다. 영국의 사상가 레슬리 영은 1996년 ‘시장의 도: 사마천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논문에서 “프랑스 중농주의 학자들이 도입한 사마천 사상이 스미스에게 전해져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으로 재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사마천은 “경제 원리를 아는 자는 부자가 됐고, 국가는 강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관치(官治)는 시장 효율성을 훼손해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나라 무제 말기에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 것은 상업 활동을 억제하고 전매사업과 국영기업을 확대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의 스승' 사마천

“저질 전매품과 국영기업 제품이 백성들에게 강매됐고, 경제 활동은 위축됐다. 결과적으로 나라 수입은 더 줄었다. 반면 부국강병에 성공한 전국시대 제후들은 상인들이 영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간섭을 줄였다. 정책을 추진할 때도 현장 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발탁했다. 시장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최상책이요, 나라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최하책이다.”

직업 귀천을 뛰어넘어 분업과 전문화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질씨는 칼 가는 보잘것없는 기술을 가졌지만 제후처럼 반찬솥을 늘어놓고 호화로운 식사를 즐겼다. 탁씨는 양의 위를 삶아 파는 단순한 일을 했지만 기마행렬을 거느리고 다녔다. 이것은 한 가지 일에 전념해 노력한 결과다.”

명분을 내세우고 상업 활동을 천시하는 사대부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음풍농월이나 일삼는 선비에게 덕행이 있는가? 빈궁하면서도 인의를 탁상공론하길 좋아하는 선비는 본받을 만한 자들인가? 자신은 물론 백성의 곤궁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자들일 뿐이다.”

《화식열전》에는 귀 담아 들을 만한 혜안을 제시하는 글귀들이 적지 않다.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 요즘도 그대로 통할 만한 투자 철칙이다.

중국 최고의 상인으로 불리는 백규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규는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욕심을 억제했고,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행동해야 할 때는 맹수가 먹이를 낚아채듯 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사업 비법을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임기응변의 지혜가 없고, 결단하는 용기가 없고, 베풀 줄 아는 어짊이 없고,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키는 지조가 없는 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상인(사업가)의 자질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해 기업인들이 새겨둘 만한 말이다.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