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AI 로봇과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1929~1993)은 1950~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한 여배우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1953년 영화 데뷔작 ‘로마의 휴일’을 통해 일약 ‘세기의 연인’으로 부상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우연히 만난 공주와 신문기자의 짧은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헵번은 로마 방문 중 일상에 싫증을 느껴 도망나온 공주 역할을 맡아 특유의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연기를 선보였다.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과 이마가 훤히 보이는 단발머리는 고전적인 ‘헵번 스타일’로 지금도 남아 있다. 헵번은 1961년 주연을 맡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특유의 발랄함을 뽐냈다.

나이 지긋한 장년층의 추억 속에 잠들어 있던 헵번이 요즘 곧잘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인공지능(AI) 로봇 ‘소피아’의 외형이 헵번을 모델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헵번의 표정을 참고해 얼굴을 형상화했다는 게 제작사(홍콩 핸슨로보틱스)의 설명이다.

서울 방문 행사에서 상당한 수준의 대화능력을 보여준 소피아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라는 뜻인 휴머노이드 AI다. 자연스런 표정을 위해 사람 피부와 비슷한 ‘플러버(flubber)’ 소재를 적용했고 35개의 모터도 얼굴 부위에 장착됐다. 그 결과, 말하는 사람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것은 물론 눈을 찌푸리거나 깜빡이는 등 60여 가지 표정을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다.

소피아는 얼굴 앞모습과 달리, 머리 뒷부분은 회로가 그대로 드러난 모습을 하고 있다. 헵번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모델로 했지만, “보기에 불편하다”거나 “무섭다”는 반응이 많은 이유다. 인간이 일정한 단계에서 휴머노이드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인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극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 발전과 함께 인류와 공존하기 위한 휴머노이드의 역할도 정립돼야 한다.

그럼에도 휴머노이드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KAIST가 제작한 ‘휴보’ 외에도 일본 오사카대 지능로봇연구소의 ‘에리카’, 중국 과학기술대의 ‘지아지아’ 등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에리카’는 조만간 TV 앵커로 데뷔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다. TV 드라마에서도 휴머노이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보그맘’에서는 아이를 돌보고 요리하는 로봇이, 올해 ‘로봇이 아니야’에서는 여자 친구 로봇이 나왔다.

AI와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 그랬듯이 기술 진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KT의 ‘기가지니’나 SK텔레콤의 ‘누구’와 같은 AI 스피커는 이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