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우리민족끼리' 라고?
2001년 11월 6차 남북한 장관급 회담이 금강산에서 열렸을 때다. 당시 남측 수석대표였던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여차하면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상황실에 지시했다. 외교관 출신인 홍 장관이 봤을 때 북측의 회담 태도는 너무나 상식 밖이었다. 북측은 회담 내내 의제와 무관한 남측의 9·11테러 비상경계태세를 문제 삼았다. 회담 시작과 마치는 시간도 북측 멋대로였다.

북한, 核협상 기만전술로 일관

홍 장관은 북측이 본질을 흐린다고 보고 회담 결렬을 선언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인내심을 갖고 합의문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청와대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 며칠 안 돼 홍 장관은 경질됐다. 통일부 내에선 “장관 인사권을 북한이 쥐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회담은 줄줄이 이어졌고, 대북 지원책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회담 때마다 주도권은 북한이 쥐었다. 북한은 기고만장했다. 걸핏하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 남측은 마냥 기다렸다가 북측이 새벽에라도 회담하자면 군말 없이 따랐다. 도움을 받는 쪽이 큰소리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핵 협상은 본질적으로 북한의 기만전술로 점철됐다. 북한은 불리할 땐 위장평화 공세를 펴면서 보상을 챙긴 뒤엔 합의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핵 동결을 조건으로 북한에 경수로 방식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내용의 제네바 합의(1994년), 핵 포기 대가로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9·19 공동성명(2005년), 북핵 불능화와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북한 자산 동결 해제를 담은 2·13 합의(2007년),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개발 중단과 대북 식량 지원을 맞바꾼 2·29 합의(2012년) 등이 대표적 예다. 북한은 매번 이득을 챙긴 뒤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이 1차 북핵 위기 이후 25년간 벼랑 끝 위협, 평화 공세 등 극과 극을 오가는 온갖 기만책을 쓴 것은 정세 변화에 따른 공산주의 특유의 전술 차원에서다. 도발을 일삼던 북한이 올 들어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며 평창올림픽 잔치에 무임승차하려는 것도 이런 기만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멋대로 미룬 것이나, 한밤중에 금강산 합동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고 통보한 것은 평창올림픽 판을 쥐고 흔들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여차하면 “남측이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위반했다”며 파투 놓을 구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한국을 갖고 논다”는 외신의 분석은 정곡을 찌른다. 북한은 “역대 최악이 될 대회를 구원해줬다”고 선전하면서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핵 문제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남북 대화에서 ‘등가성(等價性)원칙’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핵화 합의 지켜라" 요구해야

‘평창 이후’가 더 걱정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뒤 핵·미사일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김정은이 평창을 이용해 시간만 벌고 떠나 버린다면 그 부담은 우리 정부가 진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더 이상 북한 계략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며 대북 강공책을 밝히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과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는 미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비핵화라는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면 ‘한반도 운전대’는 잡기 힘들 것이다. “(현송월이) 불편해 하신다”는 식으론 곤란하다. 더 이상 질질 끌려다니지 않고, 그 많은 비핵화 합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라고 북한에 당당하게 요구하는 정부의 결기를 보고 싶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