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성공하는 정부, 실패하는 정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10일 출범했으니 9개월이 돼 간다. 문 대통령의 1호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일자리 창출이 제1의 국정과제임을 강조하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2000년 이후 최악이다. 청년 체감실업률(22.7%)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다. 정부가 수십조원을 쓴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년일자리 점검회의에서 “일자리는 민간과 시장(市場)이 만드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라”며 일자리 창출의 공공 부문 역할을 강조하고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 주도의 창조경제이고,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로 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중·고등 학생들에게 아무리 창조적 사고를 강요해도 창조적이 되지 못한다. 방법은 하나다.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를 거듭하며 창조적 방식을 시작한다. 창조경제도 일자리 창출도 정부가 뒤로 물러나 규제로부터 기업을 풀어주고 기업의 새로운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를 만들 때에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번영으로 이끄는 국가의 특징을 ‘포용적 정치·경제제도’에서 찾았다. 포용적 경제제도란 사유재산권, 공정한 경쟁, 신기술에 대한 투자 장려를 의미하는데 그 속에서 국가가 번영했음을 베네치아와 대영제국 사례로 밝혀냈다. 반면 실패한 국가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제도를 고안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졌음을 지적했다. 포용적 경제제도란 한마디로 자유경제이고, 착취적 경제제도란 큰 정부에 의한 명령경제다.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에 대한 의지,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역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강제, 기업의 상황을 무시한 근로시간 단축정책, 최저임금 16.4%의 가파른 인상 및 위반 시 2000만원 벌금은 착취적 경제제도와 다르지 않다. 이들 정책은 거의 친(親)노동정책이다. 일자리를 줄이는 제도들이라 노조에 가입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노조원들에게는 이득이 되지만 새로이 일자리를 찾는 무직·실업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 정책은 촛불집회와 대선에 기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환경단체 등 이익집단들의 ‘대선 청구서’ 내용이기도 하다. 일부 단체가 정권 이상의 힘을 가지고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은 19세기 세계를 제패한 영국이 20세기에 들어 서서히 쇠락한 결정적인 이유로 이런 현상을 꼽는다.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자신들만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노조와 같은 특수 이익집단이 정치적으로 득세해 정부 정책을 좌우하게 되면 경제 상황이 나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익집단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규제기관의 관료·정치인들과 인맥을 쌓는다는 올슨의 주장은 양대 노총과 특정 시민단체들이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세력을 자임했던 것과 일치한다. 이들이 내민 대선 청구서는 친노동, 탈원전, 착취적 경제제도 등 반자유주의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자유주의의 종언’이 진행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자는 헌법 초안이 제안됐고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체하는 집필 기준 시안이 마련됐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나 다른 이념으로 바꾸려는 힘이 작동하는 듯하다.

그러나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에 반대되는 큰 정부, 착취적 경제제도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명령경제 실험은 이미 끝났다. 이들 체제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1989년에 나왔으니 29년도 더 된 일이다. 대한민국이 뒤늦게 실패한 역사의 길로 가는 실험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국민은 의심해야 한다. 깨어 있는 국민만이 ‘실패 국가’로의 길을 되돌릴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