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빗나간 진실'에 근거한 탈원전
에너지 자립의 길이 요원하던 한국은 1980년대 말 원자력 기술자립의 꿈을 이뤄 전력의 30% 이상을 원자력으로 공급해왔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정치적으로 탈(脫)원전 바람이 거세졌고 노후원전 10기의 중단과 신규원전 6기의 백지화를 담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지난 연말 확정됐다.

석탄 화력과 원자력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및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에 원자력이 하던 기저부하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원전을 운영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할 수는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확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원자력의 역할을 가스발전소로 대체할 경우 전기료의 폭등 가능성이 있고 가스발전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온실가스로 인해 유엔에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만일 신고리 5, 6호기 이후 신규 원전이 전혀 건설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원전산업 인프라는 사장될 것이 분명하다. 두산그룹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은 두산중공업 매각설이 나오기도 했고, 관련 기자재 생산시설들이 놀고 있으니 해당 부서에서 일하던 전문가는 감원되거나 다른 부서에 배치될 것이다. 여러 대학의 관련 학과도 없어질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주요 국정지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면이다.

또 신규원전 건설 없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가스 발전에 의해 전력계통을 운영한다면 독일의 탈원전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2022년까지 탈원전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독일은 아직 8기의 원전에서 전력의 13%를 공급하고 있는데 전기료는 탈원전 이전에 비해 3배 상승했고 온실가스 발생량도 유럽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1980년 제일 먼저 탈원전을 시도한 스웨덴은 10기의 원전 중 2기를 중지했는데 이후 2기를 건설해 현재 10기의 원전에서 전력의 40%를 공급하고 있다. 노후 원전 4기를 2020년까지 중지하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어 탈원전 기조가 사실상 깨진 상태다.

독일은 값싼 갈탄이 있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원자력 말고는 뚜렷한 에너지 자원이 없다.

태양광이나 풍력도 자원이 될 수는 있지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에서 20%의 전력량을 생산, 공급하려면 여의도 186배 면적의 수목을 없애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약 100조원의 시설투자비가 필요하다는데 원전 6기를 공급하면 해결될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필요하지만 원자력과 함께 가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번 겨울 들어 여덟 번이나 기업들에 전기 사용량 감축을 요구하는 ‘급전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지 않았는가. 향후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폭등은 공산품가격을 높일 것이며 기업들의 수출경쟁력도 잃게 할 것이다. 빗나간 진실에 의해 국가정책이 추진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익환 <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