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가만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비게이션 앱(응용프로그램) ‘김기사’를 창업한 뒤 2005년 카카오에 626억원을 받고 매각해 화제를 모은 박종환 카카오 모빌리티 이사의 말이다. 그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진정한 혁신은 정부가 기업에 혁신을 강요하거나 부추겨서 나오는 게 아니다”고도 했다.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스타트업 육성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스타트업들은 정부 지원보다 ‘혁신의 동기가 충만한 시장’을 원한다. 상장(IPO), 인수합병(M&A) 등 스타트업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출구를 넓혀달라는 게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스타트업들이 특히 바라는 건 ‘제2, 제3의 김기사’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M&A 문호가 확대되는 것이다. ‘스타트업 본고장’ 미국에서는 M&A가 상장보다 더 큰 출구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스타트업을 자극하는 선순환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을 인수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기업 규제를 고수하려다 보니 나오는 대책이라곤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대기업에 계열사 편입을 일정기간 유예하겠다”는 정도다. 이래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 M&A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어렵다. 유예기간이 끝나면 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데 어느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려 들겠는가. 이는 스타트업의 창업동기를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다른 곳도 아닌 벤처기업협회가 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자유롭게 인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지,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규제 부작위를 대기업의 신산업 분야 스타트업 인수에 적용해 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