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추천상품 투자=필패'라는 인식
한국에 ‘종합자산관리’라는 개념이 도입된 초창기인 2002년부터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를 이용해온 고액자산가 A씨(73). 30억원대 금융자산을 굴리는 그에겐 ‘금융회사에서 먼저 가입을 권유하는 금융투자상품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중국펀드를 시작으로, 2013~2014년 브라질 채권, 2016년 주가연계증권(ELS)까지…. 금융사들이 적극 가입을 권했던 상품은 투자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손실을 보게 되더군요.”

A씨 사례는 예금, 부동산, 주식밖에 없던 한국인들의 ‘투자 바구니’에 간접투자 상품이 추가된 2000년대 이후 달라진 재테크의 큰 흐름을 잘 보여준다. 한때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불린 금융투자상품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16년 위안화 급락 등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커다란 손실을 안겼다. 투자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금융사들이 어떤 상품을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하면 그때가 꼭지’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돌이켜보면 금융투자상품 판매 부문에서 나타난 쏠림 현상의 결과였다.

수익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을 고객에게 추천했다는 이유로 해당 금융사에 비난을 퍼부을 수는 없다. 일찌감치 차익을 실현해 자산을 불린 투자자에게는 이런 회사가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금융사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땀 흘려 모은 돈을 금융사 추천상품에 넣었다가 쓴맛을 본 서민들의 눈물을 봤는데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하지만 ‘지금 또 다른 쏠림이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기업실적 개선, 풍부한 시중 유동성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며 연초부터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전망에 근거해 금융사들은 고객들에게 앞다퉈 ‘해외자산 투자비중 확대’를 권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사들이 해외투자 분야에서 충분한 실력을 갖췄는가 하는 점이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를 받은 ‘빅5’ 증권사에서 해외 주식 분석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30명을 넘지 않는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종목은 3135개, 나스닥 상장 종목은 3280개에 달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들도 “한국 증권사 역량만으로 전 세계 주요 증시를 분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벅셔해서웨이 본사 14층 복도엔 대공황기였던 1929년 어느 날 증시 폭락을 다룬 뉴욕타임스 1면이 액자에 걸려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직원들에게 ‘세상에는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복사해 걸어뒀다.

또 다른 실패를 막으려면 시장이 좋을 때 ‘언제든 최악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시기가 오더라도 투자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결정을 내리는 데 온 힘을 다해야 ‘쏠림의 역습’을 피할 수 있다.

송종현 증권부 차장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