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기업과 여러 대학이 한데 뭉친 유례없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삼성전자가 사람의 뇌를 닮은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뉴로모픽 칩’을 개발하기 위해 서울대 KAIST 등 국내 유수 대학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애플 인텔 IBM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뉴로모픽 칩 도전에 나선 것도 그렇지만, 연구전략에서 산학협력이라는 개방형 방식을 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는 삼성전자가 1단계로 3년간 연구비 90억원을 지원하는 등 전액 기업 지원으로 추진되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 주도의 순수한 산학협력 프로젝트인 셈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산학협력이 보편화돼 있지만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정부 주도 산학협력이 주를 이뤄왔다. 대학과 기업 간 불신이 그 이유라고 하지만, 정부 개입으로 산학협력 유인이 왜곡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선 선진국처럼 시장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 기업과 대학 간 수평적 협력이 나오기 어렵다.

지금은 연구환경이 확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 연구인력이 6만 명, 연구개발(R&D)비가 연 15조원에 달하지만 기업 자체 연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시대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차세대 반도체 뉴로모픽 칩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을 노리는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학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끌 뉴럴프로세싱연구센터(NPRC)장은 저전력 시스템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최기영 서울대 전자공학부 교수다. 여기에 서울대 KAIST 포스텍 UNIST 등 4개 대학 17명의 교수와 연구진이 참여한다. 기업이 손을 잡고 싶어하는 대학, 교수는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가 불가피하다. ‘연구중심 대학’은 산학협력으로 거둔 기술료만 갖고도 독자연구 수행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아닌, 시장이 주도하는 산학협력이라야 진짜 혁신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