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는 구호로 해결할 수 없다
조용해야 할 겨울 대학 교정이 시끌시끌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주변 대학들은 청소원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연장 계약하지 않고, 설비자동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한 듯하다. 이들 대학에는 총장을 인격 살인하는 현수막, 선량하고 약한 노동자를 실업으로 내몬다며 대학을 부도덕하고 탐욕스럽다고 맹비난하는 붉은 글씨들이 어지러이 걸려있다. 노조 시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현장 방문 탓에 겨울의 대학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새해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16.4% 오른 7530원(시간당)으로 정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달성하려면, 매년 16% 이상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2015~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7%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앞으로 계속될 높은 폭의 인상에 시장은 경제원론을 배운 학생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당장 늘어난 급여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용주들은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앞으로 매년 16% 이상 오를 최저임금을 생각하면, 연례행사가 될 정치적 압력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보다는 일찌감치 자동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지금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 모두가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잘못 생각하지 않고서야 “가계소득의 70%가 임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식의 지난주 경제장관회의에서의 어떤 장관의 발언은 나올 수 없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상반된 힘에 의해 균형을 유지한다는 경제 현실을 모르는 무지함이 아니라면, 시장을 무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엿볼 수 있다. 예상할 수 있었던 최저임금 역풍에 문재인 정부는 힘으로 시장을 짓누를 태세다. 최저임금을 위반한 고용주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제재를 가하겠다고 한다. 명단에 오르면 구인활동이 제한되고, 7년간 신용관리 대상자로 등재된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조차 주지 못하는 사업장의 70%는 1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몰려있다.

강력한 처벌이 두려워 고용주들은 순한 양이 될까. 아마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가게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아니면 빚을 내서 대폭 오른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위험상태에 이른 한국의 가계부채, 특히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악성 부채 규모가 위험수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최저임금 1만원’은 월 160만원이 돼야 최소한의 삶을 꾸려 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1894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세계 많은 국가들이 최저임금제를 채택하고 시행해 오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지만, 이것만으로 취약계층이 먹고살 만할 사회를 만든 기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한 학생이라면 적어도 희망사항과 실현 가능한 것을 구분할 줄은 안다. 희망의 열정이 아무리 강력해도 실현 가능하지 않으면 몽상에 그칠 뿐이다. 몽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답안지는 낙제점이다. 3조원의 고용안정기금으로 소상공인들의 지불능력을 지원한다지만, 매년 더 많은 세금을 여기에 퍼부을 수 있을까. 급속한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은 취약계층의 고용안정과 소득안정이 아닌 고용단절과 절망만 낳을 수 있다.

지금의 최저임금 역풍에 정부가 칼을 휘두른다면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흥분시킬지 모르나, 그런 열광은 잠시뿐 시장은 곧 냉정한 경제논리로 역습한다. ‘사람중심 경제’ ‘혁신성장’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진정 실효성 있는 정책에 관심이 있다면 지불능력이 취약한 고용주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내수 확대와 취약계층의 역량 증대 직업훈련에 모든 지혜와 정치적 역량을 집중해야 마땅하다. 파당적이지도 않고 시대 변화의 거대한 조류에 올라타는 이런 정책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내놓을 때, 정부와 시장은 비로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촛불 정신’이 아니었나. 인간의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정부도 취약계층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byc@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