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공부문보다 기업 혁신역량 돋워야
정부는 올해 일자리·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와 3% 성장을 달성하는 ‘3·3 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경제는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출이 급증해 지난해 3%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도 대외여건이 나쁘지 않아 수출 증가세와 소비 확대 추세가 유지된다면 3%에 가까운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도 이런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근저에 깔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반도체와 석유화학 이외의 다른 산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어떤 신호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조만간 국제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리라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산업경쟁력 하락은 제조업의 가동률 추이에 잘 나타나 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0년 이후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저성장, 생산성 둔화의 문제는 오히려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세계화의 물결은 세계적으로 교역과 투자를 증대시켜 많은 저개발국을 급속하게 성장시켰고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성장의 동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문제, 교육의 질적 저하, 불평등 심화, 재정건전성 악화 등도 생산성 둔화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혁신 역량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마다 혁신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하기에 여념이 없다. 유럽 국가의 노동개혁, 미국과 일본의 법인세율 인하,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을 위한 규제개혁 등이 그런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가. 한국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하위권이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45% 수준이다. 신산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전에 각종 규제로 인해 서비스산업의 혁신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은 사라져 젊은이들이 창업보다 ‘공시족’의 길을 택하고 있다. 모든 산업에서 혁신을 촉발하기 위한 규제개혁,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동개혁, 재정건전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와 연구개발(R&D)을 촉진하는 세제개혁 등의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이런 혁신을 위한 구조개혁의 시급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투자, 특히 R&D 투자가 전제돼야 혁신이 촉진되고 생산성이 향상된다. 그런데 법인세율 인상, R&D 세액공제 축소 등 정부의 조세정책은 기업의 혁신 유인을 오히려 제약하고 있다. 정부의 핵심정책 중 하나인 혁신성장 추진 방안을 보면 과감한 규제개혁보다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소기업을 우리 경제의 주역으로 육성하고 혁신역량을 제고하겠다는 정책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정부의 핵심정책인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은 최저임금의 영향력과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크게 올리는 정책이다. 이는 그나마 각종 지원을 통해 제고하려던 중소·벤처기업의 혁신역량마저 무력화시킬 우려가 크다. 대기업도 증세와 각종 규제의 강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기업지배구조 변화 압박 등과 마주하고 있어 혁신의 기업가정신이 발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누가 혁신을 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한국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칼을 쥔 정부의 촘촘한 설계와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에 의존하는 방법만이 남는다. 그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