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뜨거운 감자' 된 가상화폐 버블
연초부터 가상화폐 이슈가 뜨겁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몇 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용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가상화폐 투자로 수십, 수백 배 수익을 올렸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학생, 가정주부 할 것 없이 너도나도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1년도 안 된 기간에 한국은 가상화폐 거래 규모나 투자자 수에서 폭풍 성장을 이룬 나라로 주목받고 있다. 외신들은 연일 한국의 ‘비트코인 광풍’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투기 시장으로 몰리게 된 데는 각국 정부의 혼란스러운 대응에도 원인이 있다.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를 지급 수단으로 공식 허용했고 미국은 가상화폐 선물거래를 용인했다. 반면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 금지에 이어 최근 채굴 중단까지 압박하고 있다.

각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거래되는 가상화폐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이나 금융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세계 기축통화 질서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흡한 것처럼 보인다. 국제적인 논의나 규범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이 엉거주춤한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기술로 채굴되는 가상화폐는 위변조가 원천적으로 어렵고 모든 거래 참가자가 정보를 분산 소유해 특정 국가나 정부의 정책 의도에 따라 화폐가치가 변동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반면 화폐 고유 기능인 거래 수단으로서는 한계가 많다. 현재의 채굴 기술로 가능한 최대 거래금액은 법정통화의 몇 %에 불과하고 그나마 소액 상거래는 속도나 비용 면에서 법정통화보다 비효율적이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교환 수단으로서 효용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내재 가치도 없어 가치 평가 기준도 모호하다.

이는 가상화폐 투자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가상화폐에 대한 통일된 국제 규범이 마련되기까지는 일반인 거래를 제한해야 하며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 거래소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를 규제하면 블록체인 연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하지만,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의 산업 활용은 별개 문제다.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한 중국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가상화폐나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신기술 개발은 인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규범 형성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규범이 마련되기 전에 신기술이 도입되면 시행착오나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신약은 일정 기간 임상시험을 거친 후 시판이 허용되듯 가상화폐도 검증과 규범화 과정을 거친 뒤 시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실험실의 쥐’ 처지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 가상화폐시장을 보면 6년 전 선물·옵션시장을 연상케 한다. 당시 옵션투자 대박 소문으로 짧은 기간에 거래량이 세계 1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러나 소문과 달리 절대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봤고 매년 손해액이 수천억원을 웃돌았다. 최근에는 투기 열풍으로 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40% 이상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 탓에 국내 시세 데이터가 글로벌 가상화폐 통계에서 제외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지난 11일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는 ‘가상화폐거래금지특별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후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국내 투자자들의 청와대 민원이 빗발쳤고 청와대는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버블은 더 커지기 전에 대응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거래 금지나 거래소 폐쇄 같은 극약 처방은 국제 추이를 봐 가며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이래저래 가상화폐가 연초부터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

권혁세 < 숙명여대 객원교수·전 금융감독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