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표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제 오전에는 SNS에서 “정부가 오후 2시에 거래소 한 곳을 폐쇄한다는 내용의 특별대책을 발표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법무부가 다급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투기장화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20~30대 청년층과 직장인은 물론 10대 중고교생들까지 뛰어들고 있으니 정상이 아니다. 거품이 꺼지면 개인 파산과 가계 빚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 거래소 폐쇄 결정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거래소 폐쇄에 부처 간 이견이 없다”는 박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 말은 부처 간에 조율된 것”이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그제 발언이 이를 대변해준다.

그랬던 청와대가 부처 발표를 뒤집은 것은 지방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투자자의 60% 이상이 20~30대 여당 주(主) 지지층이어서다. 원인이 어쨌든 큰 파장을 미칠 사안에 대해 법무부가 불쑥 방침을 내놓고 청와대가 금방 뒤집었으니, 정책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게 됐다.

청와대가 부처 장(長)의 말을 번복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법인세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가 유감 표명까지 해야 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겨냥한 소득·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보유세 인상 논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 부총리는 “투기 억제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가 “(보유세 인상을)여러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검토 중”이라고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청와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북한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말을 뒤집은 경우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공약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청와대는 주요 국정과제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상적으로 할 일은 각 부처가 장관 책임 아래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가 어떤 이유에서건 장관이 한 말을 뒤집으면 정부 신뢰가 추락할 뿐 아니라, 공직 사회의 자율성에도 막대한 타격을 주게 된다. 정책 실무자들이 청와대에만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무사안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요 국정과제도 추진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제부터라도 ‘장관 중심 국정 운영’ 약속을 엄격히 지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행정부처의 최종책임자인 장관들이 ‘식언을 일삼는 존재’로 무장해제 당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