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흘러간 사회민주주의를 꿈꾼다고?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어떤 세계를 꿈꾸는지 의문이 있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소득을 높이고 공무원을 늘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을 없애 고용을 안정시킨다고 했을 때, 흘러간 사회민주주의의 향수에 빠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을 등에 업고 자본을 통제하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기업 경영에도 개입하려 한다는 대목에서는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정책 모두 사회민주주의 길을 걷다 몰락한 남미 국가와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다 실패한 1960~1970년대 사회민주주의 정책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주요 산업을 소유하고 관리하며 가격 결정과 생산요소 배분에 깊이 관여했다가 ‘병자’ 신세로 추락한 유럽이 지금 탈(脫)사회민주주의를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민주주의로 간다”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여당 측 인사들이 작성한 헌법개정안 초안을 보면 그들의 이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헌법 전문과 조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삭제하고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바꾸자고 하는데 민주주의가 ‘북한이 표방하는 민주주의’를 따르자는 게 아니라면 사회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고 사실이면 그렇다고 밝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는 국민 생활과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정치 이념으로 생산 수단을 공적 소유와 공적 관리로 바꾸고자 한다. 공산주의와의 차이는 폭력혁명이 아니라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무상의료, 사회부조, 사회정의를 강조한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자의 영향력이 억제되고 일반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공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된 나라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는 고실업과 빈곤에 처해 있다. 남미에 비해 사회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 유럽도 그렇다. 그리스, 스페인은 경제가 도탄에 빠졌고, 이탈리아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프랑스는 뒤늦게 후회하며 위기 탈출을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던 공산권 국가는 자유주의로 경제체제를 전환하고, 전통적인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도 자유주의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이끌었던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조롱받자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을 단행해 지금은 ‘유럽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며 선망의 대상이 됐다. 1990년대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따르던 영국의 집권 노동당은 고실업 등 경제 실정으로 몰락하자 노동조합과 관계를 끊고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자유주의로 선회했다. 일본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로 한때 득세했지만 지금은 ‘좌파의 죽음’이라고 할 정도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사회민주주의에 경도됐던 인도는 빈곤에 시달리다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개혁하면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회민주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회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준다고 해 놓고 실제는 정부가 권한을 쥐고 있다. 모든 문제를 정부가 알고 있고 해결한다고 말하지만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일반 국민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입김이 센 집단에 세뇌당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감퇴된다. 자신과 가족에게 무엇이 이익이 될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하며, 결과평등주의가 만연해 개인의 자유와 경제활동이 후퇴하고 성장은 정체된다. 소득분배는 정치·사회권력의 입김 아래 놓이고 부패가 판친다.

세계화가 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는 더 커졌다. 사회민주주의는 철학에 일관성이 없다 보니 정부가 언제 세금을 올릴지, 규제를 강화할지 몰라 기업이나 개인은 나라를 떠난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불평등을 해소한다고 말해도 실현되지 못하고 정작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은 내팽개쳐진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