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영화로 쓴 시 '패터슨'
‘난 집 안에 있다./ 바깥 날씨가 좋다, 포근하다./ 차가운 눈 위의 햇살./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내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밖으로 달리고/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쓰네.’

짐 자무시 감독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이 이른 봄날 지하실에서 쓴 ‘시’라는 시다. 그는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서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이곳 출신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과 이름이 같다.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그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해 비밀 노트에 적는다. 아침을 먹으면서 무심코 본 식탁 위의 성냥갑에서 영감을 얻어 ‘사랑 시’를 쓴다.

‘우리 집에는 성냥이 많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제품은/ 오하이오 블루 팁/ 진하고 옅은 청색과 흰색 로고가/ 확성기 모양으로 쓰여 있어/ 더 크게 외치는 것 같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오롯이 불꽃으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 불을 붙일지도 몰라요/ 난생처음이자 앞으로도/ 다시 없을 불꽃을.”’

그는 시를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평범한 성냥갑과 확성기 모양 로고에서 ‘사랑의 불꽃’을 발견하는 그의 감성은 시학개론의 ‘객관적 상관물’ 이론보다 더 현실적이다. 품에 안겨 잠든 아내를 보며 쓴 ‘빛’은 이렇다. ‘내가 당신보다 일찍 깼을 때/ 당신이 날 향해 누워/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보면/ 난 용기를 내 당신을 들여다 봐/ 벅찬 사랑과 두려운 마음으로/ 행여나 당신이 눈을 떠 화들짝 놀랄까 봐/ 내 가슴과 머리가 얼마나/ 당신으로 터질 듯한지.’

영화에 등장하는 시는 미국 시인 론 패짓이 자무시 감독의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한다. 패터슨이 퇴근길에 만난 소녀에게 들은 시 ‘물이 떨어진다(Water Falls)’는 자무시 감독이 직접 썼다. ‘밝은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 찰랑거리는 머리칼처럼’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은 이걸 비라고 부른다’로 끝나는 시다. 제목의 두 단어를 합치면 주인공이 시를 읊조릴 때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폭포(waterfall)가 된다.

자무시는 컬럼비아대 영문과 출신으로 시를 쓰며 시인들과 많이 교류했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프랭크 오하라는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썼다. 스위스 시인 로베르트 발저도 여러 직업을 가졌다.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닮았다.

영화 끝부분에서 일본 시인과 나누는 대화 중 몇 번씩 반복되는 감탄사 “아하!”는 실제 시인들의 일상 대화와 같다. 좋은 시를 음미하듯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자무시의 작품을 ‘카메라로 쓴 시’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