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역지사지 중국'(9)] 중국 현지 이해 못한 현지화는 재앙
중국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지만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거침이 없다. 중국인에게 공개적인 자리라는 의미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자리’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독대가 아니라면-독대라도 그런 대화를 나눴다고 알려질 수 있다면-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에서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은 심리치료사’라는 얘기가 있다. 치료를 받으러 와서도 솔직한 대답을 꺼리는 경향을 빗댄 말이다. 이를 회사에 적용해 보면, 중국인 직원과의 면담을 통해 조직을 진단하고 정보를 얻어내려는 시도가 무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설문지를 통해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거래처 또는 협상 상대방과의 공식적인 면담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심지어 회사 직원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극히 한정적인 의미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류재윤의 '역지사지 중국'(9)] 중국 현지 이해 못한 현지화는 재앙
중국인은 개인의 이익을 중시

“중국인과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속았다” 하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러나 속았다는 ‘현상’은 많은데 원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중국에서 ‘只知其然不知其所以然(지지기연부지기소이연: 그렇게 된 결과는 알지만 그 이유는 모른다)’이 반복되는 원인을 알려면 현지문화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 현지인에게 현지를 무조건 맡기게 되면 종종 ‘蒙在鼓里(몽재고리: 아무것도 모르다)’에 빠진다. 현지화는 현장에 맞게 해야 한다.

중국과 반(反)덤핑 시비가 생겼다. 국내 A기업은 의외로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담당임원은 “중국 담당부서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며 그 부서의 위아래를 꽉 잡고 있는 변호사를 잘 알고 있다”고 자랑했다. 중국을 잘 아는 이라면 이 얘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설령 원로 출신의 ‘전관예우’라 해도 쉽지 않은데 외부 인사(더군다나 변호사)가 그 부서와 그렇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 회사는 큰 손실을 떠안았다.

또 하나의 사례를 보자. 중국의 규제 정책이 발표되자 B그룹은 담당자를 보내 해결을 모색했다. B그룹의 고위 담당자 역시 “그 부서를 속속들이 꿰차고 있다”는 현지인이다. 평상시에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보였지만 결국 문제는 해결이 안 됐고 회사는 몇 년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중국인 지인들은 “원래 큰일이 아니었는데 이런 일을 안 해본 사람들이 나서는 바람에 그렇게 커진 거야”라며 답답해했다.

또 다른 사례. C사의 중국인 간부는 몸이 불편해서 정상출근을 하지 못했다. 회사는 치료 중인 그를 다그쳐서 정부 담당부서를 방문하게 했다. 한국 기업에서 그 직원의 외상은 사적인 이유로 무시됐다. 그런데 이 일은 이 회사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중국 정부 부서를 방문해서 “회사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 달라”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한국 회사가 나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한다. 그러니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 달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 관련자들은 “네 사정을 잘 알겠다”며 돌려보냈고 ‘중국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한국 회사 C사에 대해 이를 갈았다고 한다. 한편 회사에 돌아온 그는 “(내가 설명을 잘했고 그래서)우리 회사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과 다른 보고를 했다. “C사의 주재원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뒷얘기다.

이는 몰지각한 현지화 실천이 빚은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회사는 현지인에게 믿음을 주고 막중한 임무를 맡겼지만 ‘事與愿違(사여원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다)’다.

'현지화된 한국인' 인재 필요

중국의 인류학자 천치난(陳其南)은 “중국인들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열심히 일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대상은 절대로 기업 자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를 기업 현장에 적용하면 조직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므로 ‘적절한 현지화’가 중요하다. 우선, 중국 인재의 능력과 그 보고를 정확히 파악하고 회사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지인에게는 현지 문화에 맞게 ‘적절한 업무’를 위임해야 한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로는 ‘주재원의 현지화’는 ‘맹목적 현지화’에 눌려서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중국인에게서 조직에 대한 충성을 기대하기 어려울수록 ‘현지인 및 현장이 보여주는 현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력이 요구된다.

현지화란 절대 ‘무조건적인 동화(同化)’를 의미하지 않는다. 현지화란 본국의 기업문화와 현지문화가 어쩔 수 없이 충돌하게 될 때 갈등은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현지화의 실천에서 현지 인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현지화를 실천할 수 있는 ‘현지화된 한국인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