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작가 샤토브리앙과 안심 요리
“나는 샤토브리앙처럼 되고 싶다. 그게 아니면 어느 누구도 닮고 싶지 않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가 이토록 존경한 작가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Franois-Ren de Chateaubriand, 1768~1848)은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아버지다. 대표작 무덤 저편의 추억과 그리스도교의 정수 등으로 한 시대의 문예사조를 바꾼 거장이다.

그는 루이 16세 시절과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치하, 왕정 복고 등의 격변기에 작가·정치가·외교관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파리 남쪽 근교에 ‘샤토브리앙의 집’이 있다. 전제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 그가 나폴레옹의 노여움을 사 “파리 밖으로 나가라”는 추방 명령을 받고 10여 년 동안 살던 집이다.

일명 ‘늑대들의 골짜기’로 불리는 발레 오 루(Valle-aux-Loups)의 숲속에 있는 이 집은 작은 궁전 같다. 나폴레옹 몰락 후 루이 18세 정부의 외무장관이 됐다가 1년 만에 관직을 박탈당하고 또다시 야인으로 돌아와 머물던 곳. 1층에 들어서자 19세기 난로와 낡은 피아노 사이로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최고급 소고기 안심 요리 ‘샤토브리앙 스테이크’를 먹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귀족 출신인 그는 소 한 마리에 4인분 정도 나오는 안심의 정중앙 부위를 즐겨 먹었다. 그의 요리사 몽미레이유가 만든 이 스테이크 맛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그의 이름은 프랑스 고급요리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중국 요리 ‘동파육’이 소동파 이름을 딴 것과 비슷하다. 유명인 이름이 들어간 스테이크로는 작곡가 로시니를 위한 ‘도네도 로시니’, 앙리 4세를 위한 ‘도네도 앙리 4세’도 있다.

샤토브리앙 스테이크는 센 불로 요리한다. 안심 가운데 부분을 두툼하고 넓적하게 썰어 굽는다. 육즙이 새지 않도록 겉은 빠르게 바싹 굽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도록 덜 익혀 먹는다. ‘뼈에 가까운 고기일수록 맛있다’는 속담처럼 등뼈 안쪽의 귀한 살로 구운 만큼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감자와 베아르네즈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양념 소스는 다진 양파와 버섯을 버터로 볶아서 화이트 와인을 붓고 졸이다가 데미글라스 소스를 넣고 끓인 뒤 소금·후추로 간을 한다. 파슬리나 월계수잎을 넣기도 한다.

올해는 샤토브리앙 탄생 250주년이자 서거 170주기다. 18세기와 19세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혁명·왕정복고·망명 등 격랑에 휘말렸던 그의 80년 인생을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1년 내내 조명한다. 야인 시절 극도로 궁핍해진 그가 고향의 티티새를 닮은 새소리에 힘을 내 대작을 완성했다는 그 집 책상과 식탁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날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