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FTA를 보는 트럼프 시각에 대한 충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1차 협상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됐다. 한·미 FTA가 2012년 발효된 지 5년여 만에 개정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표방하면서 한·미 FTA에 불만을 표출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역대 최악의 무역협정”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최근의 미국 정부 입장과는 상반되게 한국은 FTA 강국이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의 최초 FTA 발효 이래 전 세계 52개국과 FTA를 맺고 있고 다른 국가와도 협상 중이다. 이번 재협상 과정을 통해 국내에서 한·미 FTA에 대한 찬반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듯하고 자유무역 회의론자들 목소리가 커질지도 모른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시작된 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2018 미국경제학회(AEA)가 열리고 있었다. 5일 ‘트럼프 경제학 첫해 평가’라는 세션에서는 유명 경제학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1년 경제정책에 관해 논의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와 국제화’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은 무역이 ‘제로섬 게임’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또 트럼프는 상품 무역 적자와 서비스 무역 적자를 다르게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무역으로 인한 제조업에서의 고용 변화와 서비스산업에서의 고용 변화가 다르다고 보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한·미 교역 관계에서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는 대미(對美) 무역수지가 흑자지만 서비스업에서는 적자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대미 무역수지 흑자폭을 과장되게 이해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하게 스티글리츠 교수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미국 차를 사지 않는 까닭은 무역 장벽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회사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미국 자동차 회사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차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FTA로 교역이 증가하고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는 자유무역이 참가 국가들의 복지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게 경제학 원리다. 그러나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들이 이득을 볼 수는 없다. FTA로 인해 불리해진 산업 분야의 소득 및 고용 감소는 단기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조정비용인 반면 장기적으로는 좀 더 자유로워진 무역정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국민 복지가 나아질 것이다. 따라서 FTA의 경제 효과를 간단히 좋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증 분석이 요구된다.

첫째, 외국 농산물 및 상품·서비스의 추가 수입으로 인한 국내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에서의 고용 감소가 어느 정도인지 여부는 경험적인 문제다. 둘째, 장기적으로 FTA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도 실증분석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대니얼 트레플러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캐나다와 미국 간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자료를 이용한 이 연구에 따르면 단기적인 효과로 관세인하폭이 가장 크고 미국산 수입품과 경쟁한 캐나다 산업에서는 고용이 12% 줄었고 캐나다 제조업 전체에서는 고용이 5% 줄었다. 반면 장기적 효과로 전체 제조업 노동 생산성이 6% 증가했는데 이는 양국 간 FTA 이전에 많은 제조업 분야가 무관세였던 점에 비춰보면 괄목할 만한 생산성 향상이다.

FTA를 통해 한국의 산업이 단기적으로 어떻게 조정됐고 중장기적으로 어떤 생산성 향상을 이뤘는지 진단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FTA의 경제 효과에 대한 자료 구축 및 분석에도 힘을 기울이기를 기대해본다.

이석배 <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