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선의로 포장된 '치명적 자만'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고사(故事) 가운데 벼가 빨리 자라기를 원한 농부가 벼의 줄기를 뽑았다가 이튿날 벼가 모두 말라죽는 일을 겪었다는 데서 나온 ‘알묘조장(苗助長)’은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도 결과가 나쁠 수 있음을 꼬집는 성어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 만큼 어리석은 농부가 실제로 있을 리는 없겠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좋은 의도에서 펼치는 정책조차도 당초 예상을 벗어난 결과를 빚어내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비일비재하다.

좋은 예의 하나가 프랑스 혁명기에 폭정으로 이름을 남긴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 정책’이다. 우유가 비싸서 서민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정부가 우유 값을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게 동결해 버리자 우유를 생산해 온 농부들은 소 사육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유 공급이 줄어들었다. 소 사육을 포기하는 이유가 건초 값이 비싸 수지를 못 맞추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로베스피에르는 이번에는 건초 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건초 재배 농민들이 건초 밭을 엎어버리고 다른 작물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건초 공급이 줄자 소를 사육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어린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마저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슷한 일이 공산(共産)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공업은 물론 농업 생산의 획기적인 증대를 꾀한 대약진운동 시기 참새가 많은 곡식을 먹어치운다고 생각한 마오쩌둥은 참새 퇴치를 명령했다. 남녀노소가 모두 나선 결과 2억 마리가 넘는 참새를 잡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기승을 부려 곡물 생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는 데도 한몫했다. 이들 일화는 정부의 정책이 의도대로 되기 어렵다는 것을 주장할 때 흔히 사용된다. 하나의 현상에 초점을 맞춰 대안을 제시하면 미처 예견하지 못한 문제점이 불거지고 이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점이 등장한다.

올해 최저임금이 기존 시간당 6470원에서 7530원으로 역대 최고 인상률인 16.4% 오르면서 나타나는 현상들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하나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저임금 노동자의 복지가 향상될 것이라는 좋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의 노동 기회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를 줄이고 초단기 노동자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바람에 학교 측과 노조가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아파트 경비원도 대량 해고에 직면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이전에도 이미 경비원 인건비가 아파트 관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던 데다 앞으로도 최저임금이 추가로 인상될 것이 예상되는 터라 많은 아파트 단지가 청소 등을 외부 용역으로 바꾸거나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시간제 아르바이트의 상징이던 햄버거 체인점들이 고용을 줄이고 있다. 24시간 하던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무인주문시스템을 도입해 주문 카운터의 인력을 최소화하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30명 이하 업체에 최저임금 인상분의 절반을 보조하는 보완책을 내놓자 이제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인력관리에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선의에서 출발한 정책이 기대한 것과는 딴판인 결과를 빚는 것은 문제를 실제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정부가 나서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제도와 유인 구조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를 뭉뚱그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고 했다.

문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질 우려가 있는 정책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채용 확대 등과 같은 정책도 ‘나비효과’를 거쳐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치명적 자만에서 벗어나 비판에도 귀 기울이며 다각도에서 신중하게 해결책을 궁리할 필요가 있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