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때아닌 예·맥족 논란
국사 시간에 잠깐 배운 ‘예맥(濊貊)’은 어떤 종족일까. 고대 한반도 동해안 일대와 중국 동북부에 살던 한민족(韓民族)의 뿌리라는 게 통설이다. 고조선과 부여·고구려·옥저·동예, 부여의 한 갈래인 한강 유역의 백제까지 예맥족으로 본다.

《삼국지》 ‘동이전’에 예족(濊族)이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단군신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하늘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호랑이를 신성시하는 예족과 곰을 중시하는 맥족(貊族)을 평정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종족기원설도 여기에서 나왔다.

학문적으로 완전히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그동안 예족과 맥족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과 예맥족을 하나로 보는 관점, 맥족은 예족을 비하하는 명칭이라는 주장이 뒤섞여 왔다. 다만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역은 예족, 춘천을 포함한 영서지역은 맥족 중심지였다는 설은 여러 고서에서 확인된다.

당나라 가탐(賈耽)은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지금 신라 북계인 명주(강릉)는 예(濊)의 고국’이라고 썼다. 기원전 129년 위만조선에 속했던 예는 한때 한나라에 합쳐졌다가 기원전 30년 새 세력을 형성하며 동예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춘주(춘천)는 예전의 우수주(牛首州)인데 옛날의 맥국(貊國)’이라고 설명돼 있다. 맥국의 흔적은 춘천의 여러 지명에 남아 있다. 왕궁터가 있는 왕대산, 왕의 무덤이 있는 능산(陵山), 도읍지였던 발산리의 수리산(응봉) 북쪽에 맥국 석벽성(石壁城) 터도 있다.

의암호의 ‘의암(衣岩·옷바위)’은 맥국을 침략한 적군이 군복을 빨래 널 듯 널어놓아 군사들을 방심하게 했다는 바위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매복하고 있던 적군이 방물장수 할머니를 앞세워 맥국 왕비가 부탁했던 패물을 구해왔노라고 속이고 성문을 열게 한 뒤 무방비 상태의 맥군을 섬멸했다. ‘맥궁(貊弓·활)’과 ‘맥적(貊炙·너비아니)’이라는 말도 맥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춘천 시민들은 ‘잊혀진 왕국’을 기리는 맥국터 기념비를 발산리에 세웠다. 그런데 춘천박물관의 최근 전시 패널과 도록에 예족만 언급되고 맥족 얘기가 빠지자 발끈하고 나섰다. 영서지역 전체를 예족 지배 구역으로 단정해 맥족의 역사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논란이 증폭됐다. 박물관은 부랴부랴 맥족 기록을 덧붙이기로 했다.

이를 두고 강원 내 지역감정이 예맥 논란으로 번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감정싸움보다 학문적 토론이 먼저여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예와 맥이 사회·정치적으로는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