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주류 경제학의 ‘인간은 합리적’이란 명제를 통쾌하게 뒤집는 행동경제학 실험이 있다. 일명 ‘최종제안게임’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 실험을 간단히 소개하면 1만원이 갑과 을에게 주어진다. 갑이 임의로 1만원을 나누도록 하되 을이 그 제안을 거절하면 양쪽 모두 돈을 갖지 못한다. 갑은 을에게 얼마를 나누게 될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갑이 을에게 1000원을 줘도 을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갑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을도 아예 받지 못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갖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 30% 이상을 나눠주지 않는 경우 을은 갑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 또한 한 푼도 가질 수 없는데 왜 거절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행동경제학의 결론은 사람은 불공정한 상황이 지나치면 아예 판 자체를 뒤집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갑과 을은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와 다른 전제가 있다. 실험 대상자에게는 각각의 권리가 주어지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 결과 서로 협력하면 상생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는 이런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 갑은 을보다 많은 정보와 자본을 바탕으로 더 많은 법과 제도적 권리를 갖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를 들어 동네 빵집 주인이 열심히 일해서 손님이 늘어나고 동네 전체에 활기가 늘어난다면 임대료가 올라가고 상가 건물의 가치가 올라간다. 임대인은 두둑한 시세차익을 챙기고 건물을 팔아치운다. 새 임대인은 더 많은 임대료를 요구하고, 때에 따라 법원의 강제집행을 통해 빵 가게 주인을 내쫓는다. 빵 가게 주인의 노력으로 건물 가치가 상승했으나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는 형국이다.

최종제안게임처럼 갑을 관계에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면, 적어도 세입자를 함부로 쫓아낼 수 없다면 임대료는 갑과 을의 협상에 의해 원만한 가격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상생 협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 더 많이 부지런해져야 하는 이유다.

자본의 이익추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공정성의 범위 내로 한정돼야 한다. 공정성을 넘어서는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새해에는 더 부지런한 정치를 해야겠다. 각각에게 충분한 권리와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갑과 을의 협력과 상생의 결과를 더 자주 보게 되는 새해가 되지 않을까.

제윤경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freedebt553@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