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호시우행(虎視牛行)이 필요한 때
황금개띠의 해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정치적으로 격동했던 지난 한 해, 우리 경제는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3년 만에 무역 1조달러를 회복하고 경제성장률 3%대를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상승치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얼마 전 기사를 통해 중소기업인들이 2018년 기업 경영환경 전망을 고려한 사자성어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랑이의 예리한 눈과 소의 착실하고 끈기 있는 모습으로 어려운 대내외 여건을 극복하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호시탐탐 눈을 번뜩이는 국제 통상 여건의 치열함이 빗대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새해에도 기업의 경영환경은 우리의 수출 시장인 주요 국가들의 통상 공세, 북한 관련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2년, 이름도 생소한 염화콜린이라는 화학제품을 생산하던 견실한 중소기업 K사 사례가 떠오른다. 가축사료 필수 첨가제인 염화콜린은 1980년대 후반까지 원료는 물론 합성기술조차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이를 국산화해 국내 및 해외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던 중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저가 공세로 생존의 기로에 선 K사는 무역위원회를 찾아 해외 수출자들의 가격 덤핑 등 불공정 무역행태에 대한 구제조치를 구한 바 있다. 다행히 반덤핑 조치가 취해졌고 이런 구제조치를 통해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에 투자한 K사는 ‘바이오콜린’ 개발에 성공, 중국 등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해외 시장에서 각광을 받게 됐다.

5년이 지난 지금, 각국의 보호무역조치는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던 선진국들마저도 자국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무역구제라는 미명하에 각종 보호무역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1995년 출범 이후 다자간 통상규범에 따른 자유무역의 감시자 역할을 해오던 세계무역기구(WTO)도 이런 전 세계적 신(新)보호주의화를 막아내기가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이런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세계 경제의 통합과 신흥 개도국 부상이 선진국에 압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은 선진국 경제는 악화됐고 일자리는 감소했다. 자국 산업과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선진국의 보호주의 공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해지는 지식재산권과 같은 무형자산도 예외일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선 사례의 K사 같은 개별 기업이 자신의 경쟁력만으로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기는 쉽지 않다.

최근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연이은 반덤핑·상계관세 조치, 세탁기 세이프가드 발동, 반도체 특허 침해 여부 조사까지 공세를 확대하고 있다. 향후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리한 가용정보(AFA: adverse facts available)’ ‘비정상적인 특정시장상황(PMS: particular market situation)’ 등의 새로운 덤핑조사 방식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 효과를 극대화할 우려도 크다.

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기업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조사가 증가할 것이다.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런 지재권 침해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수출 기업들이 이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통상 환경에 선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매우 절실한 때다. 또 범정부적으로 시장 다변화에 노력하는 한편 보호무역주의 완화를 위한 국제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위원회에 요구되는 자세야말로 ‘호시우행’의 날카롭고 예리한 눈과 듬직한 행보일 것이다. 무역구제조치를 통해 각종 불공정 무역행위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절실한 고용의 유지 및 확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의 최선봉에서 우직한 소처럼 묵묵히 나아갈 수 있도록 30돌을 맞은 무역위원회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으로 무역생태계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감시견(watch dog)’이 될 것을 다짐해본다.

신희택 < 무역위원회 위원장 htshi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