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축제로 자리잡아가는 아랍의 크리스마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직자 사이에 관행처럼 주고받았던 “해피 홀리데이”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란 축하 인사를 보내면서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종교와 이념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동안 자제해 왔던 기독교 성탄절 인사를 공개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랍 사회에서는 놀랍게도 크리스마스가 많은 지역에서 기념되고 점차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132억원이 넘는 초호화판 크리스마스트리는 다름 아닌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의 에미리트팰리스호텔 로비에 세워져 있다. 아랍 주요 도시에서 크리스마스는 이미 아랍인의 중요한 일상이 돼가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지부티 팔레스타인 등 아랍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올해도 요르단 수도 암만은 물론 아랍 중심도시인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은총의 빛을 발하고 있다. 알제리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산타 복장을 한 상인들이 북적거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도심 한가운데에 문을 열었다. 내전 중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쇼핑몰에서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 2000년간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과 화해의 상징이었던 이라크 카라카쉬 기독교 지역에서도 다시 크리스마스트리가 환하게 불을 밝혔다. 이슬람국가(IS)의 공격으로 폐쇄된 지 2년 만이다. 레바논의 베이루트 중심광장에는 무함마드 아민 모스크 바로 옆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다만 아랍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성탄절의 의미는 서구사회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무슬림들은 예수를 아랍어 표현인 ‘이사(Isa)’로 부르며 ‘주님’이 아니라 ‘신의 사도’나 ‘예언자’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아랍어 이름으로 흔히 쓰는 무사(모세), 이브라힘(아브라함), 이스마일(이스마엘), 야꿉(야곱), 슐레이만(솔로몬), 다우드(다윗) 등이 모두 성경상의 선지자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12월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것도 중동의 전통과 관련이 깊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집트와 중동지역에서는 기원전부터 12월25일을 태양신의 시작점으로 봤다. 긴긴 어둠의 절정에서 비로소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하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했고 이런 관습은 후일 로마제국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면서도 예수의 탄신일을 각각 달리 정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1월6일을, 이집트 곱틱 교회를 중심으로 에티오피아 교회와 러시아·세르비아 정교회에서는 1월7일을 성탄절로 기념한다. 아랍에서 가장 많은 1000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을 가진 이집트에서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 11월25일부터 예수 탄생일로 보는 1월7일 이브인 1월6일까지 그들은 43일간이나 특별한 절제의식을 치른다. 주로 채식을 하면서 일체의 육식을 금한다. 1월6일 밤부터 그들은 교회에 모여 예수 탄생을 기리며 다음날 새벽까지 기도하고 찬송을 부른다. 대부분의 무슬림 이집트인도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즐기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드 밀라드 마지드(성스러운 예수 탄신일)”라는 인사를 나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양말을 걸어두고 선물을 기다리는 산타클로스의 전통도 중동에서 시작됐다. 이 풍습은 4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인 미라지역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의 미담에서 유래됐다. 어느 날 성 니콜라스는 자신의 교구에 사는 가난한 세 처녀가 낭패를 당해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영적인 치유와 함께 몰래 결혼 지참금을 전해줘 새 출발을 하게 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진다. 성 니콜라스가 바로 산타클로스가 됐다.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구고, 중세 유럽이 암흑의 질곡을 헤맬 때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견인했던 원래의 아랍 세계가 크리스마스를 끌어안고 제모습을 찾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