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가상화폐 투기, 강 건너 불구경할 때 아니다
현대 경제에서 화폐는 그 자체의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금화나 은화와는 다르다. 국가가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법률로 강제적 통용력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화폐의 기능이 국가의 강제력만으로 충분히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화폐를 상대방에게 주면 언제든 반대급부로 재화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예컨대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보유한 화폐를 던져 필사적으로 상품을 사들이게 되는데, 이는 상대방이 나중에 그 화폐를 받고 상품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 법적 통용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공동체가 발행한 화폐나 달러가 법정화폐를 대신해 쓰이기도 한다. 통화정책에 실패해 2008년부터 자국화폐를 포기한 짐바브웨가 그 예다. 가장 중요한 화폐제도의 기틀이 신뢰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도 신뢰만 쌓인다면 화폐로서 기능할 여지는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비트코인의 가치가 극도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본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화폐를 쌓아두고 쓰지 않는 현상이다. 12월 초순까지처럼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가기만 한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화폐퇴장’이 확산된다면 화폐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반대로 현재처럼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크게 오른 비트코인 가격이 더 이상 안 오르게 되면 비트코인을 투매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양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상화폐에 내재된 또 하나의 근본적 약점은 현대 화폐경제의 기반인 신용창출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신용제도는 저축과 투자를 효율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경제가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개인 간 재화와 서비스의 매매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신용을 창출할 수 없다.

화폐이론과 역사에 비춰볼 때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가상화폐 열풍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열심히 모은 재산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익명성을 이용해 범죄와 탈세 등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가상화폐 열풍의 문제가 명확하기에 당국의 대응은 더 분명하고 신속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산업기술과 규제라는 관점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고 최근에는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규제에 나설 태세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사이 거래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커졌고 그에 비례해 잠재적인 손해규모도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불개입을 선언한다면 그 역시 올바른 접근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등 두 곳의 선물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상장했으며 거래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만들고 자금세탁방지법을 적용하는 등 제도 내에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참고해 거래소 운영기준을 제정,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거래에 수반되는 각종 법률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하는 등 잠재적인 피해규모를 줄여야 할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