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하영춘의 이슈프리즘] 파사현정과 내로남불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고 한다. 교수신문이 전국 교수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사견(邪見)과 사도(邪道), 즉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정법(正法), 즉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소망도 담겼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적폐청산이 1년 내내 지속된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 상황에 이보다 더 들어맞는 단어도 없을 듯하다.

이를 반영하듯 관련 기사엔 공감하는 댓글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다소 삐딱한 댓글도 달렸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올해 가장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행동이 많았다’는 뜻이다.

교수들은 '파사현정'이 맞다는데

정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이런 오해를 살 만한 일은 많았다. 아무리 야당이 주로 이 말을 사용했다고 해도 이틀이 멀다 하고 언급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 정부의 적폐를 걷어낸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의미였다. 탈(脫)원전 등 논란이 많은 정책 밀어붙이기나 장관 인선 등 인사에선 특히 그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도 그렇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공개적으로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셀프 연임’을 문제삼고 나섰다. 금감원은 내년 1월 중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경영권 승계절차,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운영 등에 대한 검사에 착수키로 했다. 누가 봐도 연임 임기가 만료되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지난달 연임이 확정된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겨냥한 조치임을 알 수 있게 돼버렸다. ‘지난 정부서 취임한 CEO 전원 교체설’과 ‘전·현직 CEO 간 알력설’ 등도 난무한다. 금융계에서는 ‘누굴 보내려고 저런 강공을 펼까’ 하며 잔뜩 궁금해하는 눈치다. 윤종남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은 “하나금융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정부는 틈만 나면 셀프 연임의 문제점을 얘기하면서도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최 원장도 지난 13일 연 언론사 경제· 금융부장 간담회에서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특정인을 내려보내기 위해 임기가 남은 이장호 당시 BS금융 회장을 몰아냈다가 거센 관치 역풍에 직면했던 박근혜 정부나, 회장으로 뽑힌 사람을 연거푸 주저앉히다가 결국 정권 실세인 사람을 KB금융 회장으로 보냈던 이명박 정부와는 분명 다르다는 점도 은근히 내비친다.

'내로남불'이 어울린다는 주장도

과연 정부의 말이 맞는지, 아니면 또 다른 낙하산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 파사현정이란 말이 어울리는지, 내로남불이 더 적합한지도 가늠할 수 있다.

파사현정이라는 말은 본래 불교용어다. 고대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삼론종(三論宗)에서 나왔다. 수나라 때 길장(吉藏)은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 이렇게 썼다. “다만 논(論)에 비록 세 가지가 있지만, 의(義)는 오직 두 가지 길뿐이다. 첫째는 현정(顯正)이요, 둘째는 파사(破邪)다. 삿됨을 깨뜨리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고, 바름을 드러내면 위로 큰 법이 넓혀진다(但論雖有三, 義唯二轍. 一曰顯正, 二曰破邪. 破邪則下拯沈淪, 顯正則上弘大法).”

지금은 파사현정으로 쓰이지만, 당시 먼저 내세웠던 것은 ‘현정(顯正)’이라고 한다. 결국 파사가 힘을 얻으려면 현정이 훨씬 빛나야 한다. 비단 금융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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