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4차 산업혁명이 여는 농업의 미래
필자처럼 도시에 태어나 도시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농촌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잘 모른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홍수나 가뭄, 농산물 개방 등으로 언론에서 농촌의 피해상황을 크게 보도할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농촌은 우리 국민이 매일 먹는 먹거리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곳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제조업 중심의 무역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교우위가 낮은 농업은 국민의 관심과 지원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농촌은 젊은 사람이 떠나고 고령화되면서 소득이 줄고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에 400만 명이던 농촌인구는 지난해 250만 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40% 수준에 달한다. 소득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평균 농가소득은 3700만원으로 2인 이상 도시가구 연평균 소득 4700만원의 78% 수준에 불과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정보와 디지털 혁명에 뒤처진 고령화된 농촌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농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게 농업에 대한 인식과 농업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1990년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와 2000년 들어 시작된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을 거치면서 우리 농업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낮고 비효율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해 왔다. 경쟁력 강화보다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 보전에 급급해옴에 따라 그동안 천문학적인 예산이 농촌에 지원됐지만 농업의 경쟁력은 살아나지 않고 농민들 사이에서 농업이 희생됐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해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농업을 경쟁력이 낮은 1차 산업으로만 보지 않고 1차와 2차 및 3차 산업이 융합된 6차 산업, 경쟁력 있는 미래산업이 될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같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농업생산과 유통에 혁신을 가져오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상예측시스템으로 농산물 수급을 조절해 가격안정을 꾀하고 자연재해를 예방하고 있으며 스마트팜, 농업용 드론, 농기계 공유 시스템 등으로 생산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해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유통 면에서도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한우 고기와 같은 신선식품을 자판기로 판매하고 있고,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다양한 판매앱을 개발해 소비자와 농민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고령화로 활용되지 못한 농지나 임야에 태양광을 설치해 농외소득을 증대시키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농업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산업이 될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청년실업, 낮은 출산율, 농촌고령화 등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도 청년들의 영농창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예컨대 호주는 대도시 도심에 체험농장을 설치해 젊은이들이 손쉽게 농민의 일상을 체험하고 농부가 되는 전문교육을 이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스위스와 같은 농업선진국처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운동이 최근 농업협동조합 등 농업계를 중심으로 범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헌법반영서명에 참여한 국민이 1000만 명을 넘을 만큼 열기가 뜨겁다. 농촌이 단순한 먹거리 제공 역할을 넘어 환경보전과 재해예방, 그리고 국민 건강에 힐링을 제공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등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다원적이고 공익적인 기능을 갖고 있음을 헌법에 반영해서 이를 토대로 농촌살리기를 적극 지원하자는 취지다.

도시와 농촌은 공간적 구분은 있지만 농촌은 도시인에게 마음의 고향이고 향수의 대상이다. 건강한 농촌이 있어야 건강한 도시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숙명여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