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회고록과 자서전
지난 3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회고록 판권이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 6000만달러(약 652억원)에 팔렸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다. 전임자 빌 클린턴(《마이 라이프》, 1500만달러)이나 조지 W 부시(《결정의 순간들》, 1000만달러)보다 월등히 비쌌다.

오바마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낙원 테티아로아 섬의 호화 리조트에서 집필할 것이라는 소식도 세인들 입에 오르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자본주의자 버락 오바마’라는 흥미로운 사설이 실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그가 돈을 벌게 내버려두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제3의 길’로 유명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460만파운드(약 68억원)의 선인세로 《여정》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그는 거액의 강연료로도 종종 구설에 올랐다.

회고록과 자서전은 특정시점의 사건 중심인가, 개인사 중심인가의 차이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공인(公人)의 것일 경우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밝히는 기록이요, 사료(史料)라는 측면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회고록은 문학의 한 장르로도 인정받는다. 윈스턴 처칠은 회고록 《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1953년 처칠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경합에서 이기고 받은 노벨상은 평화상이 아니라 문학상이었다.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글에서 보인 탁월한 묘사, 고양된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는 빼어난 웅변력.” 당시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사유는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자서전으로는 《간디 자서전》도 유명하다. 한 인간의 나약함과 참용기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더없이 솔직한 고백으로 평가받는다. 히틀러의 옥중 자서전 《나의 투쟁》은 오랫동안 금서였지만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리콴유의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은 그 자체로 싱가포르의 성장사다.

아쉽게도 한국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중에서는 “바로 이런 것!”이라 할 만한 게 잘 보이지 않는다.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日省錄)》이나 양반층 문집을 보면 기록 문화가 없지 않았지만 근현대 이후 제대로 된 개인기록물이 많지 않다. 《백범일지》도 종종 윤문과 대필 논란에 휘말렸다.

우리 사회의 회고록 문화가 빈약한 것은 이런 책이 선거 때면 쏟아져나오는 풍토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공직 출신의 회고록 가운데는 편향된 기억에 근거했거나 지나치게 본인 중심이어서 ‘부분적 진실’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건 전 총리가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을 냈다. 전 대통령들과의 일화, 행정·선거의 비사 등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공직자 회고록을 보면 종종 아쉬움도 생긴다. “현직 때는 왜 그런 좋은 정책, 입바른 고언을 적극 못 했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