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상속세 폐지 등 파격적인 세제 우대책을 내놓고 기업인의 가업(家業) 승계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는 보도다(한경 11월23일자 A1, 3면 참조). 경제의 근간인 기업 상당수가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 위기에 몰리자, 상속 활성화로 산업의 맥을 잇고 일자리도 지키기 위해서다.

독일은 상속 공제금액의 한도를 없앴고, 일본은 한시적으로 상속세 납부를 유예했다. 미국은 지난 9월 상속세 폐지(2025년부터 적용 예정)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가업상속을 단순히 ‘부(富)의 세습’으로 봤다면 이런 정도의 세제 우대책들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은 세계적인 장수기업의 나라다. 1421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 기업인 사찰 및 문화재 건설·보수업체 곤고구미(金鋼組)를 비롯해 100년 이상 업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1만5000개를 넘는다. 가업승계 전통이 강한 독일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이 500여 개나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고용 유지라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가업승계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숱한 강소(强小)기업들이 생겨난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4년 “기업상속공제는 단순한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사뭇 다르다. 가업승계 관련 세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행 상속세 규정에 따르면 최대주주의 경우 최고 세율(50%)에 30%를 할증한 65%의 세율이 부과된다.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고 조건도 까다롭다. 그나마 매출 3000억원이 넘는 곳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조사대상 78.2%가 가업 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고, 이 중 72.2%가 상속·증여세 부담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을 정도다.

흔히 기업경영을 망망대해를 건너는 배에, 경영인을 선장에 비유하곤 한다. 언제 어떤 경쟁자가 나타날지, 언제 새로운 제품과 트렌드가 등장해 시장판도가 바뀔지 모른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절박함을 안고 사는 게 경영인의 숙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정을 바쳐 키운 가업의 승계마저 어렵다면 경영인들이 기업할 유인(誘引)을 찾기 힘들어진다. 100년 기업은 고사하고 안정적인 경영을 바탕으로 세계를 누비는 강소기업도 제대로 키워내기가 힘들 것이다. 제조업 강국 일본과 독일의 경쟁력 원천인 장수기업과 히든 챔피언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