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도 넘은 비방전…위기 자초하는 한국 자동차업계
얼마 전 일이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한 지인이 전단지 한 장을 기자에게 건넸다. 딱 보자마자 눈을 의심하게 하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철수 임박 한국GM, 쉐보레 차량 구매하면 후회막급’. 한 경쟁 자동차 회사가 한국GM을 비방하면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한 전단지였다. 내용은 가관이었다. 한국GM이 철수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쉐보레 차량을 사면 중고차 가치가 폭락하고 나중에 사후서비스(AS)도 받기 어렵다는 ‘험담’이 가득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전단지 안에 붙어 있는 기사였다. ‘철수설에 휩싸인 한국GM이 올해도 1조원 가까운 손실을 볼 수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본지 기사가 ‘한국GM 차를 사지 말라’는 장삿속 포장지로 둔갑해 있었다.

전단지의 출처는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의 영업본부였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아무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자동차업계지만 최소한의 상도덕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흘러나왔다. 한국GM 측은 “안 그래도 근거 없는 철수설 때문에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전단지까지 나돌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단지를 돌린 회사 측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이 연말 실적 평가를 앞두고 급한 마음에 과한 행동을 한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국내 자동차업계 영업사원 간 볼썽사나운 비방과 험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회사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경쟁사 영업사원들이 달라붙어 악성 댓글을 다는 게 주 업무 중 하나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동차 영업사원들의 도 넘은 마타도어는 온라인상에서 소비자들의 비방전을 부추기기도 한다. ‘쉐슬람’이나 ‘현기빠’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쉐슬람은 제너럴모터스(GM) 쉐보레 브랜드를 옹호하고 다른 회사 차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기빠는 현대·기아자동차 편을 드는 사람들을 뜻한다. 영업사원들은 이들의 댓글을 자사에 유리하게 편집해 악용한다.

수입차 업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소비자 신뢰를 깨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아우디폭스바겐에 이어 최근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등 내로라하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줄줄이 배출가스 인증 서류를 위조하거나 부품 변경 인증 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게 대표적 사례다. 상황이 이런데도 해당 업체들은 자사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타사 브랜드를 깎아내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딱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소비자들의 분통은 듣지 않는 듯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본산인 미국과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고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통상 압력은 거세지고 있으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보복을 멈춘 듯 보이는 중국은 언제 다시 돌변할지 모른다. 국내 공장의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인건비는 해마다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매년 노조의 파업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손바닥만 한 내수 시장을 놓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서로 등을 두드리고 격려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격전을 준비해도 모자랄 판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오히려 위기를 자초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장창민 산업부 차장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