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제시한 정부가 이번에는 직무급제를 들고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맞춰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는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게 모두 기존 호봉제를 적용하면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뒤집어 말하면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직무급제가 제대로 안 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정부 스스로도 “기득권 노조의 반발 해소가 관건”이라고 고백한다. 호봉제를 선호하는 기존 정규직 노조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우려다. 벌써부터 장기근속자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는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임금피크제 도입 때보다 저항이 더 거셀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게 그렇다. 대통령은 “전체 노동자의 90%인 비조직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부가 양대 노총의 반대를 돌파하고 직무급제를 관철시킬 복안이 있는지 의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직무급제 도입 등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공약을 실행에 옮기려 할 때는 선·후의 문제를 면밀히 따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직무급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기 무섭게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고, 뒤이어 고용노동부가 부랴부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로드맵부터 제시한 건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선·후에 대한 혼동은 필연적으로 일대 혼란을 수반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13년 임금피크제 등이 빠진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발생했던 인건비 부담 증가, 세대 간 갈등 등이 단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 노동 아젠다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해 놓고는 기업 반발이 거세자 재정으로 보조하겠다는 것이나, 임금이나 중소기업의 생산성 문제 등은 제쳐둔 채 근로시간 단축 카드를 들고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먼저 매듭지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고, 당장 박수받을 일에만 몰두한다면 노동개혁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포퓰리즘은 국민과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