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한국인의 사농공상(士農工商) DNA
‘홍종학 논란’은 새삼 두 가지를 일깨운다. 첫째,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여기에 돈과 자식이 얽히면 더욱 적나라해진다. 국회의원 시절 상속·증여세 강화를 외치던 홍 후보자도 물려받을 때가 되니 속내가 드러났다. ‘내로남불’의 허구적 독특성(나는 특별하다는 심리)이 발동한 것이다.

‘쪼개기 증여’ ‘격세 증여’는 절세 전문가의 솜씨다. 중학생 딸이 엄마한테 차용증을 써주고, 이자는 은행처럼 원천징수까지 할 정도로 디테일에 철저했다. 안철수 말마따나 ‘혁신적 세금 회피이자 창조적 증여’다. 청와대는 이런 게 ‘상식적’이라니, 국민 어휘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둘째, 사회지도층의 비뚤어진 특권의식이다. 홍 후보자는 ‘가방끈’이 기업인의 ‘근본적인 소양’이라고 책에 썼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기업가를, ‘되는 것도 안 되게’ 만드는 정치인이 폄훼한 것이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는 안 읽힌다. 오히려 한국인의 의식속에 내재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DNA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농공상은 주자학과 함께 들어왔다. 중국 일본에선 네 개 직업군으로 분류한 ‘사민(四民·백성)’을 가리키는 데 비해 유독 조선에선 신분 서열로 고착화됐다. “30세에도 갓을 쓰지 못한 자는 12~13세의 갓을 쓴 자로부터 동(童)이라 불리며 오만불손한 대우를 받는다.” 청일전쟁 직전 조선을 정탐한 혼마 규스케가 《조선잡기》에서 언급한 얘기다.

사족(士族)은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납세 군역 등의 의무는 거의 지지 않았다. 과거를 통해 ‘관(官)’이 되면 군림과 착취에 몰입하는 게 다반사였다. 혼마는 “조선의 관인(官人)은 모두 도적”이라고 했고,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7)에서 ‘흡혈귀’에 비유했다. 권력에 복종해도, 존경심이 생길 리 만무하다.

사농공상은 갑오개혁(1894) 이후 명목상으론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에서 말끔히 지워진 건 아니다. 흔히 ‘출세’ ‘좋은 집안’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고관대작이나 대대로 부자여야 좋은 집안이고, 남들 위에 군림해야 출세로 친다. 요즘은 ‘사(士)’ 위에 ‘정(政)’이 있다.

국회의원은 아무나 불러다 호통치고, 검찰은 기업인이면 살인죄 수준의 구형을 때리고, 관료는 민원인 골탕먹이면서 할 일을 한다고 여긴다. 교수 집단조차 갑질, 표지갈이, 표절 등 부도덕 범죄가 심심찮다. 이런 행태는 고스란히 모방된다. 약간만 우월한 위치여도 타인에 대한 인신모독과 언어폭력이 예사다. 비정규직, 알바, 감정노동자, 조교, 인턴, 후임, 후배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라면 다들 겪어본 일이다. 아이들까지 왕따, 이지메에 익숙해간다.

정체는 민주공화국인데 지위가 권력이 되고, 완장이 되고, 특권이 되는 ‘심리적 계급사회’나 다름없다. 씨줄 날줄처럼 얽힌 사농공상과 관존민비(官尊民卑)야말로 역사적 적폐다. 이런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선진국 도약도, 사회통합도 어불성설이다.

유럽의 귀족도 세금을 거의 안 내는 특권층이었다. 대신 전쟁이 나면 앞장서 싸우며 목숨으로 의무를 대신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존경받고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조선 세종 때 설립(1440년)된 영국 이튼스쿨은 총리만 21명을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이다. 한 해 졸업생이 250명가량인데 양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이튼 출신이 2000명이 넘는다.

한국에는 통계상 소득 상위 10%는 있는데 지도층, 상류층의 솔선수범 문화가 없다. 돈은 많은데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다는 얘기다. 자리 빼앗기, 밟고 올라서기, 더 탐하기만 횡행한다. 자진 퇴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버나드 쇼는 “자신을 더 많이 부끄러워할수록 더 많이 존경받는다”고 했다. 지도층이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순 없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