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내놨다. 벤처확인제도를 혁신·성장성 중심으로 개편하고, 3년간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한다는 게 골자다. 세부적으로는 스톡옵션 비과세 특례를 10년 만에 재도입하는 등 눈길을 끄는 세제지원책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가 혁신창업국가로 가기 위해 제시한 대부분의 정책이 여전히 ‘정부주도’라는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벤처기업 확인제도 개편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혁신·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민간주도’라고 표현하지만 진짜 민간주도로 가려면 정부가 벤처기업을 ‘확인’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실리콘밸리처럼 ‘민간 벤처캐피털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기업이 곧 벤처기업’이라는 인식을 왜 못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재정·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끌어들여 벤처자금을 늘리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재정·정책금융을 기반으로 한 펀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 민간 벤처캐피털 시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금융이 민간 벤처캐피털을 밀어내는 꼴이 되면 그건 ‘마중물’이 아니라 ‘독(毒)’이라고 해야 맞다.

정부가 벤처·창업을 주도하겠다는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코스닥 활성화, M&A 촉진 등을 위한 규제완화 또한 겉돌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벤처캐피털이 혁신생태계를 이끌도록 하겠다면 회수시장 역할을 하는 M&A와 상장 관련 규제를 더 파격적으로 혁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정책으로 돌아가는 식이면 곤란하다. 1990년대 말 ‘묻지마 벤처붐’이 가져다 준 엄청난 후유증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민간 벤처캐피털이 주도하는 혁신생태계라야 비로소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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