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갈등 탓 난치병 앓아온 지구촌
30년 뒤엔 걱정 없는 따뜻한 사회 됐으면

황주리 < 화가 >
[문화의 향기] 나의 미래 이야기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봤다. 1982년에 나온 전편은 황폐해진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하는 2019년 지구의 가상 미래 속에서, 인간을 대신해 노동을 하는 복제인간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전편이 나온 당시에도 영화 속에서 해리슨 포드가 열연한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인지 복제인간인지 논란이 분분했다고 한다.

전편을 본 필자는 후속편에서 해리슨 포드의 나이 든 얼굴을 보는 일이 마치 필자 자신을 보는 듯 참 쓸쓸하게 느껴졌다. 산다는 건 참 덧없고,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과 달리 160분이라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왜 공상과학 영화는 늘 실제 미래보다 너무 멀리 앞서가는 것일까. 전편에서 그린 2019년은 지금과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가상의 미래다. 2017년의 지금 여기, 아직도 지구의 인간들은 복제인간이 아니라 같은 종인 인간들끼리 날로 심해지는 갈등 때문에 난치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인류는 얼마만큼 진화했을까. 그만큼 다양화된 범죄와 테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방향으로 심화되고 있다. 30여 년이라는 세월에 관한 상상 속에 빠져본다. 30년 뒤에도 살아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음에 딱 드는 복제인간을 곁에 두고 있지는 않을까.

딱 30년 전에 필자는 부푼 꿈을 안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때는 컴퓨터가 대중화되지도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니 해커니 그런 단어도 없었다. 물론 총기 난사도 이슬람국가(IS)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올 가을 오랜만에 찾은 뉴욕은 구석구석 새롭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낡은 지하철은 그대로인 듯했다. 뉴욕의 지하철은 세계 각 나라 사람들의 각기 다른 유전자가 섞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냄새를 풍긴다. 마치 종류가 다른 향수를 한꺼번에 쏟아놓은 것 같다. 쾌적한 서울의 지하철이 얼마나 안락하고 편리한지 우리는 모르고 산다. 그 많던 거지들이 자취를 감춘 뉴욕의 겉모습은 30년 전보다 놀랍도록 깨끗하고 안전해졌지만 사실은 더 위험해졌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만 해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위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분별이 덜 어려웠다. 요즘 시대는 우리 중 누가 위험한 사람인지를 분별하기 어렵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며칠 머물렀다. 그곳에서 돌아오자마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다는 속보를 들으며 사고가 발생한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서성였던 기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그곳을 거닐던 시간에 범인은 이미 그 호텔에 들어와 32층 객실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며 대량살육을 꿈꿨을 것이다. 범인은 특정 조직이나 이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찬 자생적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외로운 늑대’도 30년 전에는 없던 단어다.

30년 뒤에는 다정한 인공지능이나, 천사 로봇 같은 지금은 없는 따뜻한 단어가 생겼으면 좋겠다. 무거운 캔버스도 들어주고 아무리 큰 캔버스의 밑칠도 순식간에 해내는, 늙어감이 두려운 인간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도 해주는 선하고 친절한 인공지능을 그려본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늙을수록 대단한 그림을 그리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오늘도 나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하는 속담을 노래처럼 중얼거린다.

황주리 <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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