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정부의 R&D 지원, 초기투자가 중요하다
‘혁신성장’이 정부의 중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고,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달에 출범했다. 위원회는 연말까지 범정부 차원의 ‘4차 산업혁명 종합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난해 한국 공공·민간 부문 R&D 투자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4.23%로 세계 주요국 중 최고였다. 또한 미국에 출원한 한국의 특허 건수가 2015년(1만7924건) 기준 미국, 일본 다음으로 많았던 것을 보면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전을 혁신성장의 결과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지난 성과가 분명한데도 혁신성장이 정부의 키워드로 등장한 이면에는 국내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출원된 특허의 피인용 정보로 살펴보면 한국 발명자들의 특허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가면서 양적 팽창뿐만 아니라 기술 진보의 질적 개선이 동반됐다. 반면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해 보면 특별한 질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혁신성장을 위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정책은 어떠해야 할까. 국내 총연구개발투자의 75%는 민간에서 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좀더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정책이 수립되고 이행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운동해야 효율적일지 아는 것은 어렵다. 사람마다 맞는 운동법이 있는 것처럼, 경제에 따라 그에 걸맞은 정부정책이 있을 것이다. 올해 4월에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실린 사브리나 호웰 뉴욕대 교수의 논문이 이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논문은 미국 에너지부의 중소기업 혁신 연구지원 사업에 지원했던 하이테크 기업들의 자료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지원비를 받은 기업의 연구개발 계획이 그렇지 못한 기업의 계획보다 좋을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지원받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비교해서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 지원에 신청한 기업들의 연구계획서 순위를 이용했다. 기업의 연구계획서에 대한 순위가 일단 매겨지고, 지원 여부 컷오프(당락 결정)는 추후 모두 순위가 정해진 이후에 결정된다. 그 결과 연구계획서에 순위를 정하는 순간에는 해당 기업의 신청서가 지원비를 받을지 미지수다. 따라서 지원여부의 컷오프를 살짝 넘어서 연구지원을 받는 기업과 살짝 모자라서 연구지원을 못 받는 기업의 미래에 성과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연구지원비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기 단계에서 소규모 지원을 받은 기업의 경우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특허수가 많고,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을 확률이 커지고, 수익이 날 경우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지원서의 순위가 거의 비슷한 기업들을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비 지원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재정적으로 부담이 많은 신생기업이거나 새로운 산업 분야에 속한 기업들에서 그 효과가 컸다. 반면에 후기 단계에서 더 많은 액수의 연구비를 받은 경우에는 연구비 지원의 효과가 미미했다. 이에 따른 정책적 시사점은 연구 초기 단계의 소규모 지원이 후기 단계의 대규모 지원보다 효율적일 수 있고, 신생기업이나 새로운 산업 분야에 속한 기업에 대한 지원이 우선순위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연구로 한국의 연구개발 지원에 대한 직접적인 함의를 도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그 성과가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시사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실정에 걸맞은 구체적인 정부정책이 뒤따라야 혁신성장이라는 화두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석배 <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